바흐를 바라보는 숭고한 시선

  • 성남아트센터 월간 '아트뷰'
  • 글=이준형 (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 2011.06.16 11:38

마사아키 스즈키・바흐 솔리스텐 서울

마사아키 스즈키

‘바흐의 심장박동을 느끼는 지휘자’ 마사아키 스즈키가 한국의 고음악 앙상블 바흐 솔리스텐 서울을 이끌고 바흐의 B단조 미사를 선보인다. 자신이 이끄는 바흐 콜레기움 재팬과 함께 15년이 넘는 시간동안 바흐의 칸타타 전곡 녹음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스즈키의 경험과 지혜가 한국의 연주자들과 어떤 화합을 이뤄낼지 흥미롭다.

1990년대 중반, 마사아키 스즈키와 바흐 콜레기움 저팬Bach Collegium Japan이 발표한 바흐 칸타타 음반, 그것도 ‘전곡 1집’이라는 제목을 보고 받았던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실 유럽의 평론가와 음악계도 ‘생각보다 훨씬 훌륭한 연주’라는 모호한 호평을 보내면서도 일말의 의구심을 지우지는 못했다. 아시아인, 특히 합창 전통과 그리스도교 전통이 강하지 않은 일본인이 과연 바흐 칸타타 전곡을 연주할 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200곡이 넘는 바흐의 칸타타를 모두 연주한다는 것은 한 음악가의 평생에 걸친 재능, 경험, 선택, 도전, 그리고 헌신을 요구하는 엄청난 과업이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스즈키의 스승 톤 코프만은 우여곡절 끝에 바흐 칸타타 녹음을 완주했고 존 엘리엇 가드너는 1년 만에 실황 연주로 그 큰일을 치러냈다. 그리고 이제, 스즈키도 서서히 종착점이 보이는 마지막 직선 주로에 접어들었다.

다른 이들보다 느리고 신중했던 스즈키의 15년은 참으로 값진 세월이었다. 그의 바흐 칸타타 1집과 48집을 들어보면 마치 사계절과도 같이, 조금씩 조금씩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는지를 실감할 수 있다. 연주자 구성, 악기 편성, 피치(음고) 등등 많은 것이 그동안의 학문적 논의와 새로운 발견에 맞추어 바뀌었으며, 합창단과 독창 가수들은 잘 익은 포도주처럼 무르익었다. 특히 음악적인 면과 함께 종교적인 깊이를 추구하는 스즈키 특유의 해석은 자신의 교회음악을 ‘음악으로 하는 설교’로 계획했던 바흐 자신의 의도와도 맞아떨어지는 것으로, 독특한 명상적인 아름다움이 있다. 초창기에는 종교적 깊이에 비해 다소 단조롭다는 지적도 있었지만, 이제는 여유 있는 손길로 바흐가 작품에 새겨넣은 다양한 음악 양식을 표현하고 있다.

바흐 솔리스텐 서울
더불어 스즈키는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지난 2005년 명동성당에서 열린 내한 연주회는 그 자체만으로도 감동적인 사건이었지만 우리나라의 젊은 고음악 연주자들과 긴밀한 교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일본보다 고음악 운동이 훨씬 더 늦게 일어난 우리 음악가들에게 스즈키가 쌓은 경험과 지혜는 큰 도움이었을 것이다. 바로 그해, 2005년에 창단한 바흐 솔리스텐 서울음악감독 박승희, 지휘 김선아은 이번 연주회에서 스즈키와 함께 바흐의 B단조 미사를 들려준다.

바흐 솔리스텐 서울(Bachsolisten Seoul)은 창단 이후 다양한 바로크 음악을 연주하며 많은 주목을 받았지만 기본적으로 성악 앙상블이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번 연주회를 위해 오케스트라를 새롭게 구성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려온다. 물론 스즈키와 함께 콘서트마스터인 나츠미 와카마츠를 비롯해서 바흐 콜레기움 저팬의 기악 연주자 9명이 합세한다고 하니 갓 태어난 오케스트라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거장인 스즈키의 원숙한 시선과 젊은 우리 연주자들의 활력이 한데 어우러진 뜻깊은 무대가 되리라 기대한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