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6.16 11:35
카롤린 칼송 안무 '블루 레이디' & 유니버설발레단 '디스 이즈 모던 2'
유럽 현대무용의 새로운 방향 제시, 카롤린 칼송
유럽 현대무용의 대모로 일컬어지는 카롤린 칼송은 20세기 후반부터 불기 시작한 유럽 현대무용의 세계적인 주도를 이끈 무용가 중 하나다. 칼송은 어떤 소재든 간에 철학적이고 영적靈的으로 접근해 이를 섬세한 표현력과 시적인 움직임으로 실현시키기로 유명하다. 특히 즉흥과 구성을 교차하는 테크닉을 개발함으로써 이후 등장하는 수많은 현대무용가들에게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블루 레이디'는 1983년 초연된 카롤린 칼송의 대표작이다. 원래 그녀가 직접 춘 독무였으나 테로 사리넨이라는 남성 무용가가 그 춤을 물려받아 2008년 리옹댄스비엔날레에서 기립 박수를 받은 바 있다. 사리넨은 칼송과 많은 접점을 갖고 있는데, 같은 핀란드계 혈통에다가 그녀의 무용 수업을 들었고, 그녀의 무용단에서 활동한 경험을 가지고 있다. 칼송이 그를 정신적인 아들 같은 존재라고 하는 것도 괜한 말은 아닌 것이다.
카롤린 칼송은 테로 사리넨에게 자신의 춤을 그대로 따르도록 요구하지는 않았다. 칼송은 동양 사상에 입각해 자신을 음陰 그리고 사리넨을 양陽으로 묘사하는데 애초에 똑같을 수 없다는 전제하에 사리넨에게 새로운 해석을 고취시켰다. 실제로 칼송은 “결국 이 작품은 제 것이기도 하지만 사리넨의 것이기도 해요”라고 말한 바 있다. 카롤린 칼송에게 보답이나 하듯 테로 사리넨은 신비로우면서도 카리스마 넘치는 춤으로 무대를 장악한다.
이탈리아 베니스의 신비롭고 환상적이면서도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분위기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블루 레이디'는 다양한 감정의 변화를 보이는 여인의 자화상 같은 이미지의 작품으로 완성되었다. 이러한 작품에서 획일된 정답을 찾을 필요는 없다. 보고 느끼고 이를 통해 가슴속에 무언가를 남긴다면 제대로 감상한 것이다.
현대 춤의 나침반, 안무가의 천재성, 위대한 절제미, 예견할 수 없는 마법 같은 춤 등 온갖 찬사를 달고 다니는 무용가가 있다. 20세기 후반 혜성처럼 등장한 지리 킬리안(모국 체코의 발음으로는 이리 킬리안)은 정교하고 심오한 안무로 세계를 놀라게 했다. 그의 안무는 근본적으로 고전발레의 우아한 테크닉과 현대무용의 정서적 표현을 환상적으로 조화시켜놓았다. 한마디로 발레와 현대무용의 장점만을 이상적으로 결합시킨 춤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남다른 음악성을 빼놓을 수 없다. 킬리안은 음악을 영감의 원천으로 꼽으면서 “내 춤은 거의 항상 음악으로부터 자극받아 만들어진다”고 말할 정도로 안무에서 음악적 요소를 강조한다.
유니버설발레단이 소개하는 '프티 모르 Petite Mort'와 '세츠 탄츠 Sechs Tanze' 역시 지리 킬리안의 경이로운 안무력과 음악성을 그대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작은 죽음이라는 의미의 '프티 모르'는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00주년을 기념하여 잘츠부르크 축제를 위해 만든 작품으로 모차르트의 피아노 협주곡을 사용했다. 느리게 흐르는 아름다운 선율은 잔인함과 독단이 만연한 신성하지 않은 세계에 놓인 인간의 모습을 아이러니하게 부각시킨다.
'세츠 탄츠'는 난센스한 상황 속에 숨은 삶의 의미를 찾아가는 ‘여섯 개의 춤’이다. 역시 모차르트가 작곡한 여섯 곡의 독일 무곡을 사용하고 있다. 왕정 시대에서 볼 수 있을 만한 하얀 분칠, 장식적인 가발, 허름한 속옷 등으로 분장한 무용가들은 유머와 신랄함이 공존하는 부조리한 세계를 춤으로 그린다.
이번 무대를 위해 지리 킬리안과 함께 선택된 한국의 발레 안무가 허용순은 삶과 사랑에 대한 애환을 유머러스하게 그린 '디스 이즈 유어 라이프 This is your life'를 내놓았다.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은 제각각이지만 그 속에서 하나로 관통하는 주제를 유추해낼 수 있을 것이다. 재작년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서 유니버설발레단II에 의해 초연됐던 만큼 이번에 얼마나 더 다져졌을지 눈여겨볼 만하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