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6.08 23:26
마지막 전수자 조갑녀·장금도씨 '춤'
藝妓 통해 기방서 완성된 즉흥춤… 문화재 지정 안돼 전승자도 없어
멸종 위기의 춤을 부여잡고 있는 두 춤꾼이 19일 국립국악원 예악당에 오른다. 민살풀이춤의 최고수로 통하는 조갑녀(88)와 장금도(83)다. 문화재 지정은 안 돼 전승자도 없다. '조갑녀·장금도 이후'는 생사(生死)마저 불투명한 춤인 것이다.
민살풀이춤은 살풀이 장단에 명주 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이라 '민'자가 붙었다. 이 즉흥춤은 예기(藝妓)들을 통해 기방에서 완성됐다. 조갑녀·장금도는 다 권번(券番·노래와 춤을 가르친 예기 양성소) 출신이다. 이들의 말투도 장식이라곤 없는 민살풀이춤을 닮아 있다.
"춤? 나도 몰러. 장단이 나허고 앵기면 춰지고 아니면 팔이 접히고."(조갑녀)
"춤이야 항상 그거이 그거지 뭐. 내 맘대로 춰요. 싱겁지?"(장금도)
조갑녀는 서울의 딸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살풀이춤도 배웠지만 수건 들고 추면 아무래도 춤이 가벼워져. 나는 맨손(민살풀이춤)이 더 좋아"라고 했다.
1923년에 태어난 그는 일곱 살 때 전북 남원권번에 입적했다. 부친이 권번의 장구 선생이었다. "권번에서 글도 가르쳐줬는데 동기(童妓)들이 예뻐 종일 따라다니다 소리·악기·춤까지 배웠다"는 것이다. 1934년 춘향제 때 춘 승무로 "남원에 명무(名舞) 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열아홉 살에 혼인하면서 판에서 물러났다.
"자식들에게 지장 줄까 봐 접었어요. 그래도 큰 춘향제 때는 할 수 없이 끌려나갔지. 춤이 참 맹랑한 것이지요. 잡을 수도 없고 놓을 수도 없고."
민살풀이춤은 살풀이 장단에 명주 수건을 들지 않고 추는 춤이라 '민'자가 붙었다. 이 즉흥춤은 예기(藝妓)들을 통해 기방에서 완성됐다. 조갑녀·장금도는 다 권번(券番·노래와 춤을 가르친 예기 양성소) 출신이다. 이들의 말투도 장식이라곤 없는 민살풀이춤을 닮아 있다.
"춤? 나도 몰러. 장단이 나허고 앵기면 춰지고 아니면 팔이 접히고."(조갑녀)
"춤이야 항상 그거이 그거지 뭐. 내 맘대로 춰요. 싱겁지?"(장금도)
조갑녀는 서울의 딸 집에서 전화를 받았다. "살풀이춤도 배웠지만 수건 들고 추면 아무래도 춤이 가벼워져. 나는 맨손(민살풀이춤)이 더 좋아"라고 했다.
1923년에 태어난 그는 일곱 살 때 전북 남원권번에 입적했다. 부친이 권번의 장구 선생이었다. "권번에서 글도 가르쳐줬는데 동기(童妓)들이 예뻐 종일 따라다니다 소리·악기·춤까지 배웠다"는 것이다. 1934년 춘향제 때 춘 승무로 "남원에 명무(名舞) 났다"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열아홉 살에 혼인하면서 판에서 물러났다.
"자식들에게 지장 줄까 봐 접었어요. 그래도 큰 춘향제 때는 할 수 없이 끌려나갔지. 춤이 참 맹랑한 것이지요. 잡을 수도 없고 놓을 수도 없고."
장금도는 제주도에서 연습 중이었다. 공연은 3년 만이다. "그래도 인이 박여서 춤은 나온다. 막걸리도 끊었고 이렇게 가끔 춤추는 게 낙"이라며 웃었다.
1928년생인 그는 열두 살에 "먹고살려고" 전북 군산의 권번에 들어가 춤과 노래를 배웠다. 4년을 공부하고 그 일대에서 이름난 예기가 됐다. 하지만 아들이 열 살 때 '기생 자식' 소리가 싫다고 하자 춤을 딱 접었다. TV에서 국악이 나오면 방으로 들어가 누웠고, 늙어서 가끔 춤을 추러 갈 땐 며느리에게 "온천 다녀오마" 하고 나가 바느질집에 미리 맡겨놓은 소복(의상)을 찾았다. "배운 게 죄라서…"라고 했다.
조갑녀·장금도는 "뱃속에 판소리 다섯 바탕이 있어야 좋은 춤이 나온다"고 했다. 이들을 한 무대에 세우는 '춤'(연출 진옥섭)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는 공연이다. 진유림의 승무, 임이조의 한량무,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이정희의 도살풀이춤,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 하용부의 북춤도 만날 수 있다.
조갑녀가 '업계 선배'라 장금도가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 조갑녀는 "춤사위를 만드는 건 손이 아니라 발이고, 무릎을 섬세하게 쓰는 건 속 멋"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민살풀이춤에 대해 품평을 부탁했더니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답이 돌아왔다. "잘 춥디다." 더는 아무 설명을 달지 않았다. 싱겁지만, 춤 자체로 승부하는 고수다웠다.
상상해보라. 빈손으로 무대에 오른 구부정한 춤꾼을. 한쪽 팔을 든 채 조금씩 회전하고, 손목과 팔꿈치를 살짝 비튼다. 치맛자락을 잡는데 그 맵시가 다 춤이다. 움직임은 꼼꼼한 바느질처럼 느리다. 춤은 흐르면서 어느 순간 장단을 이끌 것이다.
▶19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02)3011-1720~1
1928년생인 그는 열두 살에 "먹고살려고" 전북 군산의 권번에 들어가 춤과 노래를 배웠다. 4년을 공부하고 그 일대에서 이름난 예기가 됐다. 하지만 아들이 열 살 때 '기생 자식' 소리가 싫다고 하자 춤을 딱 접었다. TV에서 국악이 나오면 방으로 들어가 누웠고, 늙어서 가끔 춤을 추러 갈 땐 며느리에게 "온천 다녀오마" 하고 나가 바느질집에 미리 맡겨놓은 소복(의상)을 찾았다. "배운 게 죄라서…"라고 했다.
조갑녀·장금도는 "뱃속에 판소리 다섯 바탕이 있어야 좋은 춤이 나온다"고 했다. 이들을 한 무대에 세우는 '춤'(연출 진옥섭)은 한국문화재보호재단이 주최하는 공연이다. 진유림의 승무, 임이조의 한량무, 김운태의 채상소고춤, 이정희의 도살풀이춤, 김경란의 교방굿거리춤, 하용부의 북춤도 만날 수 있다.
조갑녀가 '업계 선배'라 장금도가 '형님'으로 깍듯이 모신다. 조갑녀는 "춤사위를 만드는 건 손이 아니라 발이고, 무릎을 섬세하게 쓰는 건 속 멋"이라고 했다. 상대방의 민살풀이춤에 대해 품평을 부탁했더니 짜기라도 한 듯 같은 답이 돌아왔다. "잘 춥디다." 더는 아무 설명을 달지 않았다. 싱겁지만, 춤 자체로 승부하는 고수다웠다.
상상해보라. 빈손으로 무대에 오른 구부정한 춤꾼을. 한쪽 팔을 든 채 조금씩 회전하고, 손목과 팔꿈치를 살짝 비튼다. 치맛자락을 잡는데 그 맵시가 다 춤이다. 움직임은 꼼꼼한 바느질처럼 느리다. 춤은 흐르면서 어느 순간 장단을 이끌 것이다.
▶19일 오후 5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02)3011-17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