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6.08 23:32
상 받은 날 독설 쏟아낸
뮤지컬 '서편제' 작가 조광화
"수입 뮤지컬에만 돈 몰리고 국내 인력은 바보 취급
씨도 안뿌리고 거두려고만… 적자 못이긴 제작자는 자살
뒤늦게 평가받아 더 큰 상처"
잔칫날 같았던 뮤지컬 시상식장에서 극본상을 받고 극작가 겸 연출가 조광화(46)는 이렇게 수상소감을 시작했다. "오늘 걸친 수트는 고(故) 조왕연 대표의 장례식장에서 입었던 상복(喪服)입니다."
그가 작가로 참여한 뮤지컬 '서편제'는 7일 밤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제5회 더뮤지컬어워즈에서 최우수 창작뮤지컬상을 비롯해 여우주연상(차지연)·여우신인상(이자람)·연출상(이지나)·극본상 등 5개의 트로피를 수확한 '이날의 승자'였다. 이청준의 소설을 무대로 옮긴 뮤지컬이었다. 하지만 제작자였던 조왕연 대표는 엄청난 적자와 정신적 상실감 끝에 지난달 스스로 목숨을 끊어 이 자리에 나오지 못했다. 조광화는 마이크 앞에서 '한국 뮤지컬 유감'이라는 제목의 원고를 읽어내려갔다.
"축제여야 하는데 제 마음은 무겁습니다. … 판소리를 뮤지컬로 만든다는 이유만으로도 평가절하당하는 서러움을 겪었습니다. 저희 창작 스태프들은 누군가 해야 할 일이기에 독립운동하는 심정으로 만들었습니다. 온갖 평가절하에 시달렸는데 이제 11개 부문 후보라고 합니다. 지금 뮤지컬판은 오로지 각자의 생존밖에 없습니다. 그 전략은 결국 대한민국 창작 스태프들을 죽여갈 것입니다…."
시상식장은 숙연했다. 주최 측이 짧게 해달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조광화는 A4용지 2장 분량을 다 읽었다. 나중에 남우주연상을 받으러 올라온 조승우가 "출연료를 많이 받는 만큼 제값을 하는 배우가 되겠다"고 말할 만큼, 그의 발언이 공허한 메아리로 끝나지는 않았다.
8일 그에게 왜냐고 물었다. "하도 답답해 작정하고 토로한 것"이라고 했다.
―수상소감을 접하고 놀란 사람이 많다.
"고인이 된 조왕연 대표 때문이다. 공연 적자를 끝까지 책임지려고 했던 그가 자살했는데도 거의 관심을 못 받았다. 속상해 쌓였던 게 터져 나온 거다."
―조왕연 대표의 자살은 경제적인 고통 말고 다른 배경이 있었나?
"제작비 23억원을 들였는데 매출은 10억원이 채 안 됐고 공연권도 포기해야 했다. 콘서트기획을 하다 남 좋은 일만 시키는 것 같다며 창작 뮤지컬에 뛰어든 분이었다. 지난해 초연은 흥행 참패였고 평가도 안 좋았다. 그런데 더뮤지컬어워즈에서 뒤늦게 11개 부문 후보에 오르자 더 큰 상처를 받았던 거다."
―그것을 공론화한 건 뮤지컬계에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는 얘기인가.
"이제 외국 인력까지 들어와 뮤지컬을 만든다. 우리 사람을 키우지 않는다. 씨앗을 뿌리지는 않고 거두려고만 한다. 스타 캐스팅, 검증된 작품 등 손쉬운 쪽으로만 흐르고 있다. 반면에 창작 스태프(작가·연출가·작곡가 등)는 1~2년간 1000만~2000만원 받으면서 더 많은 일을 요구받는다. 10년 전보다 열악해졌는데 공연 올리고 나면 허망하다."
―'독립운동' 이야기는 왜 했나?
"2006년 일본 극단 시키(四季)가 한국 시장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뮤지컬계가 온몸으로 저항했다. 우리 뮤지컬이 경쟁력을 키우기 전이라 고사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작동했다. 하지만 지금 봐라. 수입 뮤지컬에만 돈이 몰리고 창작 스태프는 '죽어 밑거름이 되라'는 식이다. 뮤지컬 '서편제'는 독립운동을 한 셈이고, 산업적 경쟁력이 없는 바보로 취급받았다. 사명감이 실망으로 바뀌고 모욕감마저 느낀다."
―뮤지컬은 생래적으로 상업적인 속성이 있는 것 아닌가.
"인정한다. 누구 탓하는 게 아니다. 좁은 판에 여럿이 생존하려면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이렇게 망할 수는 없으니까 물음을 던진 거다. 관객에게도 스타만 좇지 않고 가치 있는 작품을 찾는 자극이 됐으면 한다."
―'서편제'는 다시 공연되나?
"불투명하다. 뮤지컬 거품이 꺼지는 동안 숱한 사람들이 좌절하고 떨어져 나갈 것이다. 이 분야에 순진한 꿈만 갖고 뛰어드는 창작자들에게도 '각오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