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6.09 03:04
'분장실의 채 선생님' 채송화씨가 말하는 분장과 배우
"공연 30분 전 분장실 분위기가 공연 좌우… '선생님 손에 맡길게요' 하는 배우가 최고"
지난 2일 오후 5시 30분 서울 KT&G 상상아트홀. 뮤지컬 '헤드윅'(연출 이지나)의 분장은 주인공 헤드윅(조정석)의 손가락에 빨간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으로 시작됐다. '헤드윅'은 트랜스젠더 가수가 잃어버린 사랑의 반쪽을 찾아가는 이야기. 채송화는 특수분장으로 조정석의 눈썹을 지운 뒤 파운데이션-눈화장-파우더-그러데이션-반짝이-속눈썹 순으로 헤드윅을 만들어갔다. 조정석은 "화장도 반짝이도 오늘 너무 잘 받는다"면서 "배역이 로딩되는 느낌"이라고 했다.
◆가까이에서 겪은 배우들
분장은 통상 젊은 배우부터 나이 든 배우 순으로 한다. 공연장에 천천히 오도록 선배를 배려한 것이다. 그런데 '오이디푸스'에서 예언자 테레시아스를 맡은 배우 박정자는 "나부터 분장해달라"고 했다. 무대에 1시간 일찍 나가 연습하려는 욕심이었다. 채송화는 "박정자 선생님은 '나이도 성별도 가늠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캐릭터로 만들어달라'면서 '더! 더!'를 요구한 프로"라고 했다.
'헤드윅'의 조승우도 비슷했다. 그는 남보다 1시간 먼저 도착해 드럼을 연습했다. 어느 날 채송화가 조금 늦었더니 난리가 났다. 조승우는 분장으로 눈썹을 지우면 "난 외계에서 지구를 구하러 온 조드윅이다!"를 외쳤다. 자신에게 거는 주문(呪文)이었다.
칫솔에 파운데이션을 잔뜩 묻혀 직접 머리 분장을 한 한명구(연극 '돈키호테'), 뚱뚱한 특수의상과 분장을 순식간에 벗고 미녀로 변신하느라 울어야 했던 최성희·윤공주('미녀는 괴로워'), 분장 트러블을 피하려 삭발까지 감행한 양준모('오페라의 유령'), 콧수염을 매일 3번이나 바꿔 붙여도 불평하지 않은 김성기(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도 잊을 수 없는 배우였다.
◆"선생님 손에 맡길게요"
채송화는 국립극단 연극 '오이디푸스', 극단 여행자의 '한여름 밤의 꿈'을 비롯해 뮤지컬 '미녀는 괴로워' '이블데드' '오페라의 유령' '캣츠' 등으로 기억된다. 예닐곱 편을 동시에 진행할 땐 25명의 분장 팀원을 지휘한다. 한때 배우를 꿈꾸다 접고 1990년대 말 프랑스에서 분장을 공부하고 돌아온 그는 "공연 30분 전의 분장실 분위기가 그날의 공연을 좌우한다"면서 "적당한 말로 배우의 긴장을 풀어주는 기술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요즘 '헤드윅'에서 헤드윅은 조정석·최재웅·김동완·김재욱이 나눠 맡고 있다. 그런데 조정석의 분장만 특별하고 나머지 셋은 자연스러운 느낌이 난다. 채송화는 "조정석씨가 워낙 동안(童顔)이라 '사연 많고 파란만장한 여자'로 만들어달라고 연출가가 주문했다"면서 "전엔 분홍색을 많이 썼는데 이번엔 짙은 스모키 화장으로 갔다"고 말했다. 조정석은 "무대로 나갈 내게 분장은 '창과 방패'"라고 했다.
공연이 끝나고 분장을 지울 때 기분은 분장사나 배우나 비슷했다. "긴장이 풀리고 후련하면서도 허전한 느낌"이라고 했다. 배우 수천 명의 얼굴을 '만진' 채송화에게 최고는 누구였을까. 1초도 망설임이 없었다. "'선생님 손에 다 맡길게요' 하는 배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