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6억원 VS. 자오우지 60억원] '백남준 디스카운트'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1.06.06 03:07

韓·中 1세대 대표 글로벌 작가 작품, 크리스티 홍콩 경매 나오니…
비디오 아트 창시자가 도대체 왜? 미술 시장에도 국력 고스란히 반영
고장 나면 부품 구하기도 어렵고 작품 관리도 체계적이지 못해…
"백남준 프로모션 함께 고민할 때"

백남준(1932~2006)과 자오우지(趙無極·91). 지난달 28일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 한국중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두 거장(巨匠)의 작품이 나란히 경매에 올랐다. 두 작가는 1950년대 비슷한 시기에 각각 독일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세계 미술계에 한국과 중국을 알린 개척자다. 그러나 이날 경매 결과는 판이했다. 자오우지의 가로 95㎝, 세로 130㎝짜리 대작 유화 '2.11.59'(1959)가 치열한 경합 끝에 4098만 HKD(이하 수수료 포함·약 57억원)에 팔리며 경매가 1위를 기록한 반면, 백남준의 230㎝ 높이 설치작품 'TV는 키치다'(1996)는 422만 HKD(약 5억8000만원)으로 추정가 하한선에 가까스로 판매되며 이날 팔린 42점 중 30위에 머물렀다. 통상적으로 작가 사후(死後) 작품가격이 올라간다는 점을 고려하면 백남준의 '참패'였다.

백남준(왼쪽)과 자오우지.
이날 경매를 지켜본 국내 미술계 인사들은 탄식을 금치 못했다. 우찬규 학고재 대표는 "자오우지가 중국 추상미술의 1세대라면 백남준은 비디오 아트의 창시자로 세계 미술사의 새 흐름을 주도한 인물인데도 작품성에 비해 가격이 너무 낮게 평가된다"고 말했다. 배혜경 크리스티 한국 사무소장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인 백남준 작품 값이 너무 낮으면 다른 한국 작가들이 국제 시장에서 설 자리가 줄어든다"며 우려했다.

백남준 작품 중 경매 최고가를 기록한 것은 미술시장이 한창 호황이었던 2007년 11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502만4000 HKD(약 6억원)에 팔린 '라이트 형제'(1995). 백남준과 함께 플럭서스 활동을 한 독일 작가 요셉 보이스(Beuys·1921∼1986)의 작품 '베트(Bett)'가 2008년 5월 소더비 뉴욕 경매에서 104만9000달러(약 11억3000만원)에 팔렸고, 백남준의 제자였던 미국 작가 빌 비올라(Viola·60)가 2006년 10월 영상설치 '영원한 회귀'로 37만7600파운드(약 6억6000만원)를 기록한 것과 비교해도 국제미술시장의 '백남준 디스카운트' 현상은 두드러진다. 왜 그럴까?

국내 무관심·국력 차이

서진수 강남대 교수(미술시장연구소장)는 "중국인들은 자국 작가들 작품 값이 서양 작가들에 뒤처질 이유가 없다는 자부심으로 국제 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사들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그런 인식이 부족하다"고 했다. 김순응 아트컴퍼니 대표는 "'차이나 프리미엄', '코리아 디스카운트'라는 것이 주식시장과 마찬가지로 미술시장에서도 분명히 존재한다. 백남준은 '코리아'라는 이름 때문에 불이익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백남준 'TV는 키치다' - 지난달 28일 크리스티 홍콩 아시아 현대미술 이브닝 세일에서 422만HKD(약 5억8000만원)에 팔린 백남준의‘TV는 키치다’(1996). /ⓒNam June Paik Estate
부품 구하기 어렵다

박만우 백남준아트센터 관장은 "백남준 작품은 1980~1990년대의 것이 많은데 고장 날 경우 이미 단종돼 버린 TV 모니터나 부품, 수리 전문가를 찾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 설치된 백남준의 1988년 작 '다다익선(多多益善)'의 경우 1003개의 브라운관 중 100여개의 모니터가 꺼져 있다. 정준모 2011 청주국제공예비엔날레 전시감독은 "백남준은 생전에 자기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영상이지 모니터의 종류가 아니라고 했지만 컬렉터들은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중시한다"고 말했다.

다작(多作)-작품 관리 난맥

한 미술계 인사는 "백남준은 1990년대 중반 뇌졸중으로 쓰러진 이후에도 작품을 많이 제작했는데 이때 어떤 작품들이 만들어졌으며 누구에게 판매됐는지가 명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미술계 인사는 "백남준 사후 그의 작품을 자주 취급했던 화랑들과 유족이 갈등을 겪으면서 화랑들이 작품 관리에서 손을 뗐다. 백남준 작품 관리가 체계적이지 못한 것은 그 이유 때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자오우지 '2.11.59' - 같은 경매에서 중국 작가 자오우지의‘2.11.59’(1959)는 4098만HKD(약 57억원)에 팔리며 이날 경매가 1위를 기록했다. /크리스티 제공
아직 희망은 있다

에릭 창(Chang) 크리스티 아시아 현대미술 디렉터는 "백남준의 작품은 유니크하며, 창의적이고, 역사적인 의미가 있기 때문에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값이 오른다. 다만 그의 작품을 사람들이 이해하려면 시간이 걸린다. 백남준을 어떻게 프로모션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