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5.27 17:29
- 뮤지컬 ‘헤드윅’
김동완 첫 도전…조정석 농익은 연기 볼만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1961년 8월13일 독일을 동서로 가르는 베를린 장벽이 들어선다. 헤드윅은 그 장벽이다.” 이것은 선언이다. 헤드윅을 향한, 헤드윅을 위한 외침이다. 그런데 왜 이런 선언이 필요한가. 무대를 쩡 가르는 록 음악을 배경으로 헤드윅이 등장한다. 동독 출신 실패한 트랜스젠더로 소개된다. 그런데 ‘실패한’ 트랜스젠더라니. 뮤지컬 ‘헤드윅’이 돌아왔다. 슬픈 가발을 쓰고 진한 화장으로 여전히 자신을 철저히 가린 채 그는 우는 것보단 웃는 게 쉽지 않냐고 관객들에게 다시 묻는다.
호텔 리버뷰. 등급은 별 반개. 1912년 침몰한 타이타닉 호의 생존자들이 묵었다는 그곳. 미국 뉴욕 웨스트 빌리지 허드슨 강가의 허름하고 낡은 그 호텔을 배경으로 헤드윅의 모놀로그가 이어진다.
베를린 장벽이 갈라놓은 동독 베를린에서 한셀 슈미터는 “길바닥은 나의 집, 나의 집은 길바닥”으로 여기며 어린 시절을 보냈다. 다 자란 후엔 ‘칸트 철학이 록큰롤에 미친 영향’이란 논문을 쓰고 대학에서 잘린 뒤 “할 일이 없어서 라디오에 머리를 박고 미국 팝송을 듣기만” 했다. 그의 인생을 바꾼 것은 한 미국 병사의 청혼이다. 여자가 되는 조건이었다. 어머니의 이름 헤드윅으로 개명하고 성전환수술을 감행한다. 하지만 싸구려 수술이 잘못돼 그는 1인치 살덩이를 가지게 된다. 실패한 트랜스젠더가 된 거다.
헤드윅이 남편 이츠학, 록 밴드 앵그리인치와 함께 펼치는 콘서트 형식의 작품이다. 정체불명의 성정체성으로 버림 받고 배신의 상처를 품고 살지만, 어쩔 수 없이 사랑을 갈망하는 헤드윅의 ‘광란’ 같은 모습을 조명한다.
관객 입장에선 썩 달갑지 않은 주제들이다. 성전환수술한 트랜스젠더, 동독 출신 미국 이민자, 간간이 들리는 대상이 불명확한 욕설, 수시로 오가는 황폐한 조울감. 배우 입장에서도 간단치 않다. 100분가량 이어지는 공연시간 내내 원맨쇼 하듯 연기와 노래, 입담과 몸짓을 과시해야 한다. 한마디로 ‘밑천’ 다 드러내야 하는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객과 배우 모두가 그 헤드윅 한 존재에 열광해왔다.
2005년 국내 초연했다. 첫 반응부터 뜨거웠다. 조승우, 오만석, 송창의, 윤도현이 헤드윅 계보를 이어가며 1000회를 훌쩍 넘겼다. 이번 공연에선 김동완, 조정석, 김재욱, 최재웅이 나섰다. 4인4색의 독특한 매력을 지닌 헤드윅을 골라 볼 수 있다. 가수 김동완은 뮤지컬에 첫 도전해 캐스팅부터 화제가 됐고, 3번째 헤드윅 가발을 쓴 조정석의 농익은 연기도 볼 만하다.
공연을 즐기는 방법은 생각보다 간단하다. 헤드윅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고 그의 감정을 이해해가며 록 음악을 한껏 즐긴 다음, 내 눈앞을 가렸던 편견이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돌아서 나오면 된다. 서울 삼성동 KT&G 상상아트홀에서 8월21일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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