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5.25 18:18
뮤지컬 '모차르트!' 임태경・박은태・전동석
뮤지컬 '모차르트!'의 주역 임태경, 박은태, 전동석은 같은 역할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뿜어내는 색이 확연히 다르다. 형형색색의 매력은 경쟁보다는 무지개가 되어 작품에 시너지 효과로 돌아온다. 3명의 배우, 그들이 해석한 각기 다른 느낌의 모차르트, 닮은 듯 다른 묘한 접점을 간직한 그의 인생이 성남아트센터 무대에 펼쳐진다.
감미로움이 다가 아니다, 임태경
“크로스오버 가수로 불리길 바란 적이 있지만, 지금은 크로스오버 가수와 뮤지컬 배우로 함께 불렸으면 좋겠어요. 한 가지라도 빠지면 섭섭해요.” 이제야 비로소 스스로를 뮤지컬 배우로도 인정한 임태경. 사실 그는 오디션을 보지 않는 배우, 재공연을 하지 않는 배우로 공공연히 알려져 있다. 물론 항변할 수 있는 각각의 이유는 있다. 거두절미하고 그가 변했다. 그를 변화시킨 작품이 바로 '모차르트!'다. 초연 당시 의욕적으로 오디션을 보고 작품에 뛰어들었지만, 쉬이 허락되지 않는 상황으로 인한 컨디션 난조 속에서 아쉽게 작품을 보냈었다. 스스로에게 지독할 정도로 엄격한 임태경은 미련을 해결하지 못하고 다시 한 번 모차르트가 된다.
임태경의 재해석이 신선하다. 모차르트, 그의 궁극적 목표는 관계 속의 ‘소통’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아들을 음악인으로 이끌고자 한 아버지의 뜻을 무시하지 못하고 따르기 위해 노력하며 감내해야 하는 고통, 그 자체가 모차르트식 소통의 또 다른 모습인 것이다. 모차르트는 수학자에 가깝다. 공학을 전공하고, 부전공으로 음악을 선택한 임태경에게 섬세한 패턴과 정확한 규칙 변화가 감지되는 모차르트의 음악은 수학적으로 접근이 용이하다. 음악 안에서 마치 숫자 같은 음악적 기호가 허공을 떠다니는 듯한 느낌이다. 모차르트는 열혈남아다. 세상사에 다각도로 관심이 많다. 정치, 문화, 심지어 이성 간의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는다. 음악에만 집중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다. 소통과 갈등의 교집합, 그 안에서 배태되는 좌절, 슬픔, 혜안, 절망, 또 다른 희망이 모차르트의 내면에 공존한다. 세상에 알려진 모차르트가 아닌, 임태경만 아는 모차르트를 보는 듯, 그의 해석에 묘한 설득력이 있다.
4명의 배우 중 제일 큰형님 임태경. 이번 작품은 그도 인정했듯 배우의 몫이 크다. 감미로운 음성만이 그를 대변하지 않음을 그는 이번 무대에서 몸소 입증할 것이다. 관객은 임태경이 몸의 문법으로 무대를 책임지는 뮤지컬 배우임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반짝이는 눈망울과 순수를 뿜어내는 미소, 미성을 무기로 소년과 남자 사이의 경계를 무너뜨릴 줄 아는 배우 전동석, 그가 모차르트로 가는 마지막 티켓을 거머쥐었다. 첫 연습을 마치고 온 전동석의 얼굴에는 장난기 담은 웃음이 가득했다. “신기하고 재밌어요. 새로운 음악을 하는 것 같아요. 르베이의 음악에는 캐릭터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분명한 힘이 있어요.” 노래가 어렵다고 살짝 엄살을 부리기도 했지만, 연습조차 행복하다며 격양된 감정을 감추지 못하고 발그레 상기된 얼굴이 흥분을 대변했다.
전동석이 무대에 서는 횟수는 다른 배우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다. 섭섭하지는 않다. 대극장에서 더 자유롭다는 겁 없는 배우 전동석은 횟수보다는 ‘제대로’가 중요하다. “모차르트의 광기狂氣가 저에게서 보였으면 좋겠어요. 다양한 인생의 길 중에서 그만의 뚜렷한 음악 세계를 미친 듯 지켜낸 바로 그 광기 말이죠.” 당찬 신인 전동석스러운 다부진 대답이다.
각각의 선명함으로 무대 위 광휘를 발하는 선배 모차르트들의 모든 것을 배우고 싶지만, 결코 그의 무대에 가져오고 싶지는 않다. 전동석이 없는 무대는 의미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모차르트, 그이기에 가능한 모차르트가 이번 무대의 목표다.
해병대 시절,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부른 노래로 기억된다는 ‘대성당들의 시대’로 포상 휴가를 받은 성악도 전동석은 고민 끝에 성악 대신 뮤지컬로 진로를 결정했다. 제대 후 오디션을 통해 무대에 입문, 폭풍성장을 했다. 아울러 관객과 공연 관계자들의 기대 곡선 역시 수직 상승했다. 데뷔 후 줄곧 꽃미남이라 칭함에 있어 부족함이 없는 외모로 주목받았지만, 정작 그는 캐릭터 형성에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한다. 그는 이미 형성된 그의 이미지로부터의 탈피를 꿈꾼다. ‘아이돌 뮤지컬 배우’ 전동석은 화려한 외모보다는 캐릭터로 부각될 수 있는 예를 들면 ‘인간쓰레기’ 같은, 대중이 그에게서 도저히 원하지 않을 만한 역할에 도전하고 싶다. 멋진 배우가 아닌, 무대를 즐기려는 전동석. 그의 이름이 새겨질 무대가 어찌 기대되지 않을 수 있을까.
무대에서 길을 찾다, 박은태
질문이 스타카토다. 연극 '거미의 여인'으로 말문을 열어 뮤지컬 '모차르트!'까지 쉼 없는 수다 핑퐁이 이어졌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정숙한 무대 위, 그는 발가락에서까지도 섬세함과 수줍음이 묻어나는 천생 여인의 모습을 보여줬다. 이지나 연출을 믿고 인생의 첫 연극을 선택했다는 박은태. 커튼이 열린 지 한 달여, 연극에 자신이 없었다던 박은태에게서 제법 진한 ‘몰리나’의 향이 난다. 그에겐 유희성 연출, 왕용범 연출, 이지나 연출 등 작품을 통해 만난 모두가 스승이다. 작은 디렉션도 놓치지 않고 흡수한다. 기본에 집중한 덕에, 그는 점점 더 연기를 잘해내는 배우의 형색을 갖춰가고 있다.
박은태는 지난해 초연에 이어 다시 한 번 모차르트로 무대에 선다. “아쉬웠어요. 회가 거듭될수록 모차르트를 알게 되었거든요. 초연에서는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했는데, 이번 무대에서는 좀 더 밀도 있는 무대를 보여드릴 수 있을거예요.” 한 번 했던 작품이라 자칫 안일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스스로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같은 배역을 나눈 배우들이 만만치 않다. 상대적으로 뚜렷한 특징이 부족하다는 질문에 “그게 제 매력이에요”라고 답한다. 사실 신인 티를 벗기 전에는 밋밋하다는 주변의 말에 속상하기도 했다. 타고난 끼가 없어도 열심히 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위로했지만 강풍에 흔들리지 않기란 쉽지 않은 법이다. 지금의 그는 의연하게 강풍을 스칠 뿐 흔들리지 않는다. 그에게 무대는 경쟁하는 곳이 아니라, 관객과 자신에게 캐릭터에 대한 고민과 그 답을 보여주는 곳일 뿐이다.
몰리나의 옷을 벗고 모차르트가 되는 박은태는 기대가 크다. “모차르트는 천재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비록 철이 없고 반항적이지만, 음악을 했을 때만큼은 미친 듯이 빛이 나지 않았을까요? 천재가 가질 수 있는 슬픔을 함께 공감했으면 좋겠어요.” 보여준 것보다 보여줄 것이 많은 배우 박은태, 그는 분명 발전할 것이다. 그도 믿고, 그의 무대를 본 우리도 믿는 것처럼 말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