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5.25 18:19
김현철의 happy hour, 국악인 김영임
경기민요 명창 김영임(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전수교육 보조자)은 국악계의 대중스타다. 뜨거운 눈물과 회한이 녹아든 '회심곡'으로 수십 년간 우리네 마음을 어루만졌고, 16년째 순항 중인 '소리 孝' 콘서트는 국악계에서 보기 드문 브랜드 콘서트로 70만 관객에게 눈물과 웃음을 안겨주고 있다. 4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올곧게 우리 소리를 노래하면서, 김영임은 국악의 정통성과 대중성이라는 두 갈래 길을 함께 걸어가는 중이다.
김현철 : 대한민국에서 국악인으로 산다는 것은 대중가수와는 다른 종류의 책임감이 있을 것 같습니다. 예를 들어 록커라면 자유분방한 행동도 어색하지 않을 텐데(웃음), 뭔가 자기 관리도 신경을 써야 할 느낌이랄까요.
김영임 : 말씀하신 부분이 분명 존재하는 것 같아요. 뭘 잘 모르던 젊은 시절에는 세상 사람들이 알아주는 것에 연연하던 순간도 있었는데, 40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책임과 전통에 대해 언제나 고민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데뷔 즈음만 해도 ‘나이 먹어서 하는 걸 왜 젊어서 벌써 하느냐’ ‘한 방에 인기 얻는 탤런트나 가수를 하지 왜 굳이 청승맞은 음악을 하느냐’는 사람도 많았어요. 그러다보니 쭉 한길을 걸어온 과정도 쉽지 않았죠.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국악인이라는 말을 자주 듣지만 감사한 만큼 책임이 더 큽니다. 국악은 막중한 책임이 따르는 예술이라는 걸 가슴 깊이 느끼고 있어요.
김현철 : '효' 콘서트가 벌써 16년째라고 들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래 지속되리라 예상하셨나요?
김영임 : 전혀 몰랐죠. 단발성일 줄 알았는데 반응이 정말 뜨거웠어요. 국악은 지루하다는 일반 대중의 인식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이 우리 소리 안에 존재한다는 걸 깨달았죠. ‘지나치게 대중적인 공연을 한다’ ‘전통을 벗어났다’는 이야기를 들을 때도 많은데, 이 공연이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 소리를 알리고 국악에 대한 가교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따뜻한 격려를 해주시면 좋겠어요.
김영임 : 음악이란 기본적으로는 남에게 들려주는 행위죠. 온돌방에서 부채 하나, 장구 하나 갖고 혼자 노래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거든요. 미디어 없이 귀로만 듣던 옛 시절과는 달리 지금은 너무나 많은 것이 변모하는 시대입니다. 무대 뒤에 병풍과 기와집, 달 그림을 놓고 불러야만 전통을 지킨다고 할 수 있을까요? 저는 우리 소리를 절대 훼손하지 않고 오리지널을 고수한다고 당당히 말씀드릴 수 있어요. 듣는 귀는 똑같고 관객은 냉정합니다. 제 마음대로 한다면 관객이 가만히 있지 않죠. 악기 역시 신시사이저를 제외하면 모두 우리 악기고요. 다만 요즘처럼 바쁜 세상, 비싼 입장료를 내고 찾아주는 관객들을 위해 의상이나 무대 등 다양한 볼거리에 신경을 쓰는데, 그런 부분들이 곡해되는 것 같아 속상할 때가 많아요.
김현철 : 의상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공연 동안 굉장히 여러 번 갈아입으시더라고요. 한복을 그렇게 금방 입기가 쉽지 않으실텐데(웃음).
김영임 : 공연은 시각적인 요소도 중요하잖아요? 특히 요즘 사람들은 한복을 성가신 옷으로 생각하고 입는 방법도 잘 모르는 분들이 많아요. 2시간 넘는 공연 동안 똑같은 의상 대신 한복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보여드리면 어떨까 생각했죠. 우리나라 명주, 모시, 천연 염색의 색감은 너무 아름답거든요. 공연 몇 달 전부터 제가 직접 디자인을 마친 뒤 주변 사람들과 동대문 시장을 누비면서 옷감을 골라 함께 의상을 만드는데, 그 작업이 참 즐거워요. 남편이 ‘이제 한복 장사 해도 되겠다’고 할 정도죠(웃음). 한복도 유행이 있어서 저고리 배래가 좁던 시절, 둥글던 시절 등 스타일도 다양하고 장식도 참 예뻐요.
김현철 : 같은 콘셉트의 공연으로 16년을 진행한 만큼 그 구성을 매년 조금씩 차별화해야 한다는 고민도 많으실 것 같습니다.
김영임 : 늘 공연을 찾아주시는 마니아들에게 매번 같은 공연을 보여드릴 수는 없으니 2년마다 변화를 줘요. 우선 사람들 사는 모습에 귀를 기울이고 다들 무슨 고민을 하나 살펴보죠. 공연의 작가와 함께 ‘너무 어려운 얘기보다는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우리가 살며 부딪히는 이야기를 담자’고 의견을 나눕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 어머니들은 가족과 자식을 위해 희생하며 사는 삶이 대다수인데 막상 자식은 그 마음을 잘 모르잖아요? 분신처럼 애지중지 키워도 결국 각자의 길을 떠나고요. 이런 부분에서 주제를 꺼내 공감대를 찾죠.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는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요. 상투적이긴 하지만 그만큼 관객들과 교감은 끈끈합니다.
김현철 : 공연 속 드라마에는 부군 이상해 선생님을 비롯해 연기자분들도 출연하시죠? 인원이나 무대장치 등 여러 면에서 웬만한 대중가수 공연 못지않은 대규모 구성이라는 점이 인상적입니다.
김영임 : 그동안 강부자 선생님, 전원주 선생님 등의 연기자 선생님들이 출연해주셨고, 올해는 사미자 선생님과 서우림 선생님이 각각 시어머니와 친정어머니로 등장해 양면성을 보여주실 예정이에요. 2부에서는 제가 민속악으로 굿을 하는 무대가 있는데,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레퍼토리입니다. 관객의 아픈 곳도 건드리고 덕담도 하면서 진짜 하나가 되는 느낌이죠. 관객들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뭔가 일이 잘될 거 같다’는 위로를 받으신다 해요. 두 시간 동안 무대에 서다보면 온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는 수준이지만, 관객도 저도 너무 즐겁습니다. 나이 든 관객들의 살아온 마음을 소리로 어루만져드리고 이날 하루만이라도 훈훈함을 선사하는 거죠.
김현철 : 이 모든 걸 이끌고 가려면 부담도 만만치 않으실텐데요.
김영임 : 일단 제 이름을 내건 공연이다보니 잘되든 못 되든 간에 책임감이 크죠. 백 명이 넘는 출연진, 스태프와 한배를 타고 가는 과정이니 제 욕심만 부리지 않고 바른 마음가짐을 가지려 노력해요. 항상 긍정적인 맘으로 무대에 올라가야 제대로 된 소리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마음은 콩밭에 두고 입으로만 노래하면 안 되죠. 학생들에게도 ‘언제나 일관되게 진실된 마음으로 노력하면 좋은 날이 온다’고 강조해요. 저 역시 집에서 하루도 빼놓지 않고 몇 시간씩 연습을 하거든요. 귀찮고 피곤해도 눈을 감고 할지언정 연습을 지나치진 않죠. 며칠만 빼먹으면 당장 목소리가 흔들려요. 좋은 결과란 힘든 노력의 과정을 거쳐야 해요. 노력 없이 하루아침에 쉽게 되는 것은 우연히 한 번일 뿐입니다.
김현철 :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묵계월 선생님 문하에서 수학하고, 지금도 전수교육 보조자로 역할을 담당하고 계시죠. 요즘도 스승님과 함께 소리를 하시나요?
김영임 : 지금 아흔한 살의 고령에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걸음도 못 걸으시지만, 아직도 선생님을 찾아뵈면 소리를 지도해주세요. 연로하셔서 기운은 떨어지실지라도 그 연륜과 깊이는 여전하십니다. 저희 소리전수원에 들르셔서 학생들도 지도해주시고요. 지난해 선생님과 함께 <사제와 함께하는 소리>라는 앨범을 녹음했는데, 저에게는 여러모로 참 특별한 음반입니다.
김현철 : 카네기홀 공연을 비롯해 해외 공연도 반응이 무척 뜨겁다고 들었습니다. 우리 음악을 듣는 교포들의 반응이 각별할 듯 싶은데요.
김영임 : 미국 LA처럼 나이 지긋한 1세대 교민이 많은 지역에는 이런 음악에 목마른 동포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위해 음악을 들려드리고 세계화 작업에도 힘쓰고 싶어요. 요즘 젊은 친구들도 한류를 통해 국위 선양을 많이 하잖아요? 보여줄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만들고, 좋은 후학도 키워서 전수 작업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4년 전 로열 필하모닉 협연에서는 관객의 60퍼센트가 한국인이었는데, ‘한오백년’을 부르니 다들 펑펑 눈물을 흘리고 난리가 났어요. 원래 준비해 간 곡에서 다섯 곡쯤을 더 부르고 왔죠. 지휘자도 리허설 두 번만으로 서양 악기로 우리 음악을 굉장히 자연스럽게 리듬을 타면서 흥얼흥얼 신나게 연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어요.
김현철 : 후학 양성이나 전승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듯합니다.
김영임 : 제가 더 늙기 전에 많은 사람들을 끌어줄 수 있는 여력이 남아있을 때, 좋은 후배에게 잘 대물림할 수 있기를 바라죠. 전통이란 결코 무너지지 않고 우리의 맥을 이어가야 하는, 전승과 발전에 대해 언제나 관심을 가져야 하는 존재입니다. 국민뿐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도 많은 관심을 주시면 참 좋겠어요.
김현철 : 앞으로도 계속 우리 소리를 노래하시겠지요?
김영임 : 이제 나이도 많이 먹었으니 좋은 일도 하고 싶어요. 연세가 많고 몸이 힘들어서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분들을 위해 제가 찾아가는 따뜻한 작업도 진행해야죠. 오래전 종로 탑골공원 인근에서 찾아가는 음악회를 열었을 때 기뻐하던 어르신들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해요. 노래로 사람들 맘을 움직이고 생각을 나눌 수 있다는 점에서 저는 참 복 받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자주 듭니다. 책임감을 잊어선 안 되겠지요.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