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하면 커지는 '베이스의 거인'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5.19 03:10

성악가 연광철 국내독주회 열어
한정된 배역 한계 이겨내고 세계무대 독특한 입지 확보, "공고 갔지만 노래 못 떨쳐…교수되서 제대로 효도했죠"

성악에서 베이스(Bass) 가수는 '별'이 되기 힘들다. 가장 낮은 음을 부르기 때문에 배역이 한정돼 있고, 그나마도 늙은 왕이나 수도원장 아니면 우스꽝스러운 인물에 그친다. 그런 점에서 한국인 베이스 연광철(46)은 세계 오페라계에서 예외적 입지를 확보했다. 2008년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마르케 왕을 맡아 이 역할로 이미 대가(大家)의 반열에 오른 독일인 르네 파페(Pape)를 능가한다는 찬사를 받았다.

지난 2월 뉴욕타임스는 연씨를 '덩치는 작지만 거인처럼 노래하는 강한 존재감'이라고 극찬했다. 연씨는 오는 26·28일 호암아트홀에서 한국 가곡으로 꾸민 독주회를 연다. "베이스는 불혹이 넘어야 원숙미를 제대로 발휘한다"는 그를 12일 예술의전당에서 만났다.

한국 무대에서 처음으로 우리 가곡을 부르는 베이스 연광철. /정경열 기자 krchung@chosun.com
―직접 보니 별명이 '작은 거인'인 까닭을 알겠다.

"171㎝다. 2m에 육박하는 유럽 성악가들 사이에 서면 정수리가 옆사람 팔뚝 중간에 겨우 닿는다. 처음부터 내 주위 3m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고 못박는다. 나보다 10~15㎝ 큰 사람은 올려보지도 않는다. 상대방이 내 시선에 맞춰 고개를 숙이고 눈을 낮추게 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가수에게 제일 중요한 건 목소리 아닌가. '소리'만 듣고 관객이 '저 인물은 덩치가 크구나' 느끼게 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빈 국립오페라극장과는 2013년, 뉴욕 메트와는 2014년까지 출연 계약이 꽉 찼다. 바그너 음악의 성지(聖地)로 불리는 독일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에는 100회 출연 기록을 세웠다. 한국 출신 성악가가 오페라의 본고장에서 성공하려면?

"김치에도 굴김치·갓김치·백김치가 있듯 버터도 수백 종이 넘는다. 그걸 골고루 발라먹어야 한다. 오페라도 똑같다. 베르디는 작곡 당시 좋아한 여자가 누구냐에 따라 분위기가 바뀐다. 바그너는 노래와 플루트의 화음, 클라리넷의 음정이 절묘하다. 그걸 파악하려면 지휘자가 쓰는 총보(總譜·모음악보)를 보면서 어디서 무슨 악기가 뭘 연주하는지 꿰어야 한다."

연광철은 충북 충주의 농가(農家)에서 태어났다. 등·하굣길에 고개를 넘으며 겁 퇴치용으로 '새마을 노래' '조국 찬가'를 열심히 불렀다.

―어머니 허선옥 여사가 빠듯한 살림에 풍금을 사주셨다.

"만날 종이건반을 놓고 쳤다. 고3 어느 날 방 안에 풍금이 놓여 있더라. 이맘때가 되면 우리 집은 어김없이 보릿고개를 겪었다. 시골 분들이 장남의 꿈을 이뤄주려고 배 곯아가며 사준 풍금이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자' 결심했다."

―공고와 지방대를 나와 서울대 교수가 됐다.

"돈 벌려고 공고 갔다가 노래를 떨칠 수 없어 청주대 음악교육과에 들어갔다. 작년 9월 서울대 교수가 됐을 때 부모님께 효도 한 번 제대로 했단 생각에 속으로 펄쩍펄쩍 뛰었다."

―이번 무대를 한국 가곡과 슈만의 '시인의 사랑'으로 꾸민다. '시인의 사랑'은 처음 아닌가.

"총 16곡 중 첫 번째 곡이 '화창한 5월의 봄날에'다. 내 목소리가 낮고 굵어 봄과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결혼을 하고 딸 쌍둥이의 아빠가 되면서 겪은 감정들이 노랫말에 시(詩)처럼 녹아 있다. 그 질감을 관객이 만지게 하겠다."

▶26일 오후 8시·28일 오후 5시 호암아트홀, (02)751-96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