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禁'은 고무줄?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5.18 23:44

[내한공연에 '다른 잣대'] 내국인 공연, 95년 심의 폐지
해외서 오면 '유해성 판정'… 정부·공익기관 초청은 예외
[한국에만 존재하는 심의] 유럽 등은 공연장서 알릴 뿐
국내선 '19금' 되면 관심 폭증, 도리어 노이즈 마케팅 효과만

18일 개막한 제30회 국제현대무용제(Modafe)는 해외 초청작 7편 중 3편에 '19금(禁)' 딱지가 붙어 있다. 관객을 19세 이상으로 제한한 것이다. 무용수의 노출(누드) 장면 때문이다. 하지만 안무가 안은미, 정영두 등의 국내 현대무용에서는 여자 무용수의 상체 노출이 있어도 '전체 관람가'였다. 왜 이런 차별(?)이 존재할까.

내한공연의 경우 예술흥행비자(E6)를 받으려면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의 추천이 필요하다. 영등위는 사진 등 공연자료를 보고 청소년 유해성 여부를 심의하는데 '유해성 있음' 판정이 나오면 '19금'으로 관람등급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단, 정부기관이나 지자체가 초청하거나 LG아트센터 같은 공익법인이 부른 작품은 심사를 받지 않아도 된다. 영등위 관계자는 "내국인 공연은 1995년 사전각본심사제가 폐지돼 아무 심의 없이 자체적으로 관람 등급을 정할 수 있다"면서 "영등위는 공연의 선정성과 폭력성 여부를 검토해 판정한다"고 밝혔다.

상체만 노출해도 '유해성 있음'

올해 국제현대무용제의 '19금' 딱지에는 꼬인 사연이 있다. 영등위는 스위스 현대무용인 '사이드웨이 레인(Sideways Rain)'등 문제의 3편에 대해 '유해성 없음'으로 판정했다. 축제 사무국이 제출한 공연자료에 노출 관련 사진이나 언급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국제현대무용제측은 스스로 '19금'으로 정했다.

(위 사진)올해 국제현대무용제에 초청된 네덜란드 현대무용‘Object’. 여성의 상체 노출이 있어‘19세 이상 관람가’로 공연한다. (아래 사진)지난해 공연된 국내 현대무용. 나체가 등장하지만‘전체 관람가’였다. /위 사진=국제현대무용제 제공

무용제 관계자는 "각 해외 단체로부터 받은 사진자료에는 없지만 공연에 누드가 나오는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나중에 생길지 모를 말썽을 피하기 위해 내부 회의를 거쳐 '19금'으로 결정했다"면서 "영등위는 여자 무용수의 가슴만 보여도 100% 유해 판정을 내려왔다"고 밝혔다.

'사이드웨이 레인'의 경우 무용수들이 무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계속 흘러가는 작품인데, 마지막에 노출이 등장한다. 이 현대무용 안무가는 '19금'에 대해 "스위스에서는 중·고교에서도 많이 공연한 작품이라 의아하지만 문화적 차이라면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이다.

다른 축제 기획자는 "영등위는 명확하고 세부적인 심사 기준도 없고 왜 유해성 판정을 내렸는지 설명도 하지 않는다"면서 "복잡해지는 게 싫어 노출이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심의를 통과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런 심의는 G20에서 한국뿐?

해외에서는 '19금' 등 공연의 관람 제한이나 정부기관의 유해성 심의 사례를 찾기 어렵다. '이 공연에는 누드가 포함돼 있다(This performance contains nudity)' 같은 문구로 안내할 뿐이다.

이종호 서울세계무용축제 예술감독은 "유럽 공연장에서 청소년과 성인을 구분해 관람을 가로막는 경우는 못 봤다"면서 "지금의 영등위 심의는 시대착오적인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나라 밖 공연을 가장 많이 한 현대무용가로 꼽히는 안은미는 "안은미무용단도 여자 무용수의 상체 노출이 종종 있지만 싱가포르콜롬비아에서도 연령 제한 없이 공연했다"면서 "노출이 심해 문제가 된다면 그 공연을 초청한 기획자와 극장이 논의하고 책임질 문제"라고 말했다.

노이즈 마케팅

국내 무대에서 '19금' 딱지는 매표에 날개를 달아주는 효과가 있다. 2006년 예술의전당에 초청된 벨기에 무용극 '눈물의 역사'에는 10여명의 무용수가 전라(全裸)로 뛰어다니는 장면이 있었는데, "정말 다 벗느냐" "몇 분간 노출하느냐"는 전화문의가 쇄도했다. 2003년 내한한 프랑스 현대무용 '봄의 제전'은 한 일간지 1면에 알몸 공연 사진이 실리며 무용으로는 드물게 3회 다 매진됐다. '교수와 여제자' 등 외설연극은 논외로 하더라도 '극적인 하룻밤' 같은 대학로 상업극도 '19금'을 앞에 내걸고 관객을 부르고 있다. 이번 국제현대무용제의 '19금' 논란도 "마케팅용 아니냐"는 의심을 받기도 한다.

현대무용에서 노출은 몸의 물질성을 강조한 예술적 표현의 일부이기 때문에, 누드를 화제로 삼는 건 후진적이라는 시각도 있다. 무용 평론가 장인주는 "무용이 대중적인 장르가 아니라서 벌어지는 일"이라면서 "단지 노출 장면 때문에 청소년이 좋은 공연을 볼 기회를 원천봉쇄하는 제도는 불합리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