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모란꽃은 만개한다

  • 성남문화재단 월간 '아트뷰'
  • 글=고미진 기자
  • 사진=한철우

입력 : 2011.06.13 10:32

악극 '모란이 꽃피는 시장' 배우 송용태, 박준규

성남문화재단이 야심 차게 준비한 악극 '모란이 꽃피는 시장'의 초연 무대를 책임질 배우 송용태와 박준규. 많은 무대에서 연기력과 가창력을 동시에 인정받으며 연륜의 무서움을 실감케 하는 송용태와 방송과 무대를 오가며 개성 강한 인상을 심어준 박준규가 부자지간으로 만난다. 서로의 캐스팅 사실이 작품 선택에 영향을 미쳤을 정도로 둘의 인연은 깊다. 오랫동안 알고 지낸 그들은 몇 해 전 드라마에서 단 한 번 호흡을 맞췄을 뿐, 함께하는 무대는 이번이 처음이다. 상대의 존재 의미를 잘 알기에, 또 존경과 배려가 공존하기에, 함께 무대에서 즐길 수 있다는 전제만으로도 그들이 이번 작품에 거는 기대가 크다.

박준규, 송용태

성남문화재단은 뮤지컬 '남한산성'을 통해 지역의 고유한 소재를 무대예술로 승화시키며 쌓은 저력을 이번에는 악극 '모란이 꽃피는 시장'에 집중한다. 이미 지난 2월 성남시의회 김순례 의원, 한국공연예술센터 김영수 사무처장, 한국문화예술회관연합회 박희정 부회장, 연출가 겸 에이콤인터내셔널 윤호진 대표, 성남문화원 한춘섭 원장, 작품의 각 분야 스태프 등이 한자리에 모여 사전 자문 회의를 가진 바 있다. 작품이 지향해야 하는 방향을 제시하고, 수정할 점과 보완점을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산고를 겪고 세상 밖으로 나설 채비를 마친 '모란이 꽃피는 시장', 삶의 달콤 쌉싸래한 이야기가 모란꽃으로 만개되어 창작 공연의 발전에 기여할 것이다.

'모란이 꽃피는 시장'은 재래시장인 모란시장을 배경으로 한다. 오일장으로 운영되는 모란시장은 단순히 경제행위가 오고 가는 공간이 아닌, 삶의 터전을 개척하려는 모란개척단의 근간과 인생의 숨결이 고루 배어 있는 곳이다. 이제는 문화가 되어버린 모란시장을 무대로 실향민 김범구와 그의 아들 태식, 그리고 상인들의 지난한 세월이 작품 속에 애잔하게 묻어난다. 악극을 표방하지만 신파를 따르지는 않는다. 남녀노소 누구나 공감할 수 있도록 음악과 안무, 드라마에 현대적 옷을 입혔다. 이를 위해 젊고 패기 있는 스태프가 의기투합했다. 거기에 관록의 배우 송용태가 극의 중심을 잡고, 젊은 패기의 박준규가 캐릭터에 부합하는 높은 싱크로율로 감초 역할을 하며 극적 재미를 더한다. 그들의 즐거운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탄탄한 드라마, 잘 알려진 노래와 창작곡이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음악, 정이 가득한 악극 '모란이 꽃피는 시장'은 2011년 봄의 기대작이 될 것이다.

방송에 비치는 박준규의 이미지는 코믹하고 정감이 넘친다. 버라이어티 쇼에서 빵빵 터뜨리는 멘트로 방송 분위기를 주도하는 분위기 메이커인 그는 아들과 함께 방송에 출연하며 부자가 자아내는 코믹함으로 이슈를 모은 적도 있다. 그만큼 박준규에게는 주변까지 웃게 만드는 강한 매력이 있다. 그러나 코믹함이 그의 전부를 대변하지는 않는다. 드라마 '야인시대'에서는 ‘쌍칼’ 역할로 강한 남자의 면모를 보여줬고, 주인공의 ‘아버지’로 출연한 다수의 드라마에서 다정하고 따뜻한 모습으로 카타르시스를 전하며 시청자의 눈물샘을 자극하기도 했다.

무대 위 박준규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즉각적인 반응이 있어 무대에 서는 것이 행복하다는 박준규는 크고 작은 작품에 배우로 이름을 올렸다. 뮤지컬 '코러스 라인'를 비롯해 '아가씨와 건달들', '록키 호러 쇼' 등 다수의 뮤지컬 무대에 섰고, 앙코르 공연으로 이어졌던 연극 '여보, 사랑해'에서 고혜정 작가로부터 ‘배역에 적격인 사랑이 넘치는 배우’라는 평과 함께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또한 이덕화, 오정해 등과 호흡을 맞춘 악극 '나그네 설움'은 세종문화회관 전석을 가득 채우며 매진 행렬을 이끌기도 했다.

박준규의 '무대바라기'는 악극 '모란이 꽃피는 시장'으로 이어진다. 드라마 출연 일정과 겹쳐 스케줄 조정이 쉽지 않았지만, 정(情)이 있는 무대에서 관객과 소통하고 싶었다. 대본으로 먼저 만난 '모란이 꽃피는 시장'의 첫인상은 “정감 있는 드라마와 노래가 있는,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편안한 창작극”이었다. 작품의 첫 느낌이 그를 움직였다.
그가 맡은 김태식은 가업엔 관심이 없고 아버지의 돈을 빼돌려, 시장에 들어서려는 대형 유통회사와 거래하려는 철없는 아들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김범구(송용태 분)가 시키는 일을 거부하지 못하는 여린 구석도 있다. “태식은 시대에 걸맞게 살아가고 싶은 평범한 남자다. 시대의 흐름에 편하게 맞춰 장사나 하면서 살고 싶은 것뿐이다. 너무 평범해서 오히려 큰 욕심도 없고 꿈도 야망도 크지 않은, 그저 갑갑한 아버지의 옆을 떠나고 싶은 아들이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마음속에는 아버지에 대한 효孝가 분명 자리하고 있다.”

박준규의 대중적 이미지와 태식의 캐릭터는 묘하게 접하는 지점이 많다. 캐릭터에 부합하는 배우의 이미지는 캐릭터 표현에 있어 적지 않은 도움을 준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이번 작품에서 그의 캐스팅을 두고 이견을 제시하는 이는 거의 없다. 이제부터 태식의 캐릭터 형성은 온전히 그의 몫이다. 초연 작품에 출연하는 배우가 형성한 캐릭터는 앞으로 이 작품의 롤모델로 제시될 것이다. 박준규는 “솔직히 모란시장을 배경으로 하는 기획 작품이라는 부담도 있다. 작품의 완성도를 갖추면서 모란시장이 함께 빛날 수 있어야 한다. 그게 바로 용태 형님과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세련되고 은근하게 모란시장의 맛이 전달됐으면 좋겠다”며 배우의 역할을 다시금 되짚는다.

요즘 공연계는 중장년이 관람할 만한 작품이 많지 않다. '모란이 꽃피는 시장'은 기획 단계부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세대 간의 화합을 이끌어내기에 적합한 작품으로 목적을 잡고 집중했다. 이번 작품의 키워드는 ‘화합’이라 말하는 박준규 역시 내재된 작품의 힘을 믿는다. “준규는 길이라고 생각하면 좌우를 보지 않고 부닥치는 스타일이다. 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으면 끝을 보는 작심이 강하다”며 송용태 역시 박준규의 힘을 믿는다. 서로의 힘을 믿고 따르는, 묘한 고리가 이 작품을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힘이다.

인터뷰에 이어 진행된 사진 촬영, 한 장의 사진에 캐릭터를 온전히 담기 위해 두 배우의 얼굴은 수만 가지의 표정으로 변했다. 촬영 내내 경험의 묵직한 무게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두 배우의 무게감이 악극 '모란이 꽃피는 시장'에 고스란히 담겨질 것이다.

무대 위에서 더 빛을 발하는 배우 송용태의 연기 시작은 의외로 영화다. 안양예고 3회 졸업생인 그는 고 신상옥 감독의 영화 '평양 폭격대'에 비행기 파일럿으로 단역 출연했다. 이를 계기로 방송계에 입문, 그러나 무대를 향한 갈증은 쉬이 해소되지 않았다.
1977년 11월에 서울시립가무단(현 서울시립뮤지컬단)에 입단해 창작과 라이선스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세종문화회관 개관 공연을 시작으로, 국내 초연 무대에서 주인공 테비에로 무대에 선 '지붕 위의 바이올린'을 비롯해 '달빛 나그네', '판타스틱스', '맨 오브 라만차', '시집가는 날'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연기력을 쌓았다.

그중 제1회 고향방문단으로 1985년 평양대극장에서 한 공연은 날짜도 정확히 기억할 정도로 그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공식적인 첫 극단 입단은 극단 미추다. 그는 손진책, 김성녀, 윤문식 등과 함께 극단 미추의 창단 멤버로 정복근 극본의 '지킴이'에서 주인공을 맡아 40대부터 70대까지 변신하며 열연했다. 이후 (재)서울예술단으로 자리를 옮겨, 배우 겸 감독으로 활약했다. 출연작만큼이나 수상 경력도 화려하다. 고 추송웅 연출의 '빠담 빠담 빠담'으로 제3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조연상을, '애니깽'으로 제5회 한국뮤지컬대상 남우주연상을, '프로듀서스'로 제12회 한국뮤지컬대상에서 남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일일이 열거하기 힘든 그의 이력의 의미와 연기의 가치를 이번 무대에서 송용태 스스로 입증해낼 것이다.

송용태가 맡은 김범구는 모란개척단원으로 시작해 모란시장에서 50년간 청국장집을 운영해온 시장의 살아 있는 역사다. 어릴 적, 여동생을 북한에 두고 피란을 내려온 실향민으로 여동생을 다시 만나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한다. 그의 옆에는 젊은 시절 사랑을 이루지 못한, 한복집을 운영하는 순례와 대형 유통회사와 거래하기 위해 자신의 돈을 호시탐탐 노리는 아들 태식이 있다. 치열한 삶을 살아내고 있는 범구는 어느 날 자신이 불치병에 걸렸다는 청천벽력 같은 사실을 알게 되고, 인생 여정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범구는 지독할 정도로 무뚝뚝한 전형적인 북쪽의 남자지만 내면에는 다양한 감정이 공존한다. 삶을 지켜내고자 하는 억척스러움이 있는 반면, 순례에게 고백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하는 여림과 순수함이 있다.” 또한 연출과 극본을 함께 맡은 김한길 연출과 수시로 의논, 40년 무대 인생을 살아온 그의 노하우가 작품에 녹아든다. 김 연출은 “주인공의 삶을 받아들이는 이해력이 남다르다. 특히 노래로 감정을 드러내는 장면에서 신파조가 아니라, 각 노래가 담은 느낌과 분위기를 간파하고 있다”며 송용태를 향한 깊은 신뢰를 표했다.

송용태는 현재 방송과 무대를 종횡무진 오가면서도 후학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강령탈춤 인간문화재로 다양한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 실향민의 애환을 달래주기 위해서는 대사 전달을 정확히 하면서도 사투리를 맛깔스럽게 구사해야 하는데, 강령탈춤의 근원이 황해도라서 사투리 연기에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한다. “내래 오늘 인터뷰가 삼삼하게 되는 것 같아 기분이 좋습네다”라며 즉석에서 사투리 연기를 선보이는 그는 이미 사투리 사전을 준비해 공부를 시작했다. 완벽한 무대를 위한 그의 노력은 쉼이 없다.

작품 출연 결정에는 창작품이라는 이유도 크다. “창작품이 라이선스 작품과 어깨를 못 겨룰 이유가 없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의기투합해서 완성도 높은 작품을 만들어야 명작이 나올 수 있고, 이는 창작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미력하나마 작품에 힘을 싣고 싶다”며 무대를 향한 애정을 표한다. 오만 가지 표정을 얼굴에 담는 배우 송용태, '모란이 꽃피는 시장'에서 그의 또 다른 얼굴을 만날 수 있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