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인촌 前 장관의 '소년원 일기'

  • 의왕=장일현 기자

입력 : 2011.04.14 03:03 | 수정 : 2011.04.14 05:48

“퇴임후 봉사활동하고 싶어”… 원생들에게 연기 가르쳐

"광철아(가명), 너는 장관이니까 큰 목소리로 자신 있게 말해야 해. 욕을 할 때도 또박또박 천천히…. 민수(가명)는 장관 부인 역이니까 좀 더 여자 맛이 나게 해보자. 오케이?"

지난 11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고봉중·고등학교(서울소년원) 강당에 들어선 유인촌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조목조목 연기 지도를 할 때마다 10대 청소년들은 고개를 끄덕끄덕했다. 서로 역할이나 대사에 대해 쑥덕이기도 했고 친구들이 실수할 때면 깔깔대며 연극 재미를 흠뻑 느끼는 듯했다.

11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소년원 대강당에서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원생 17명을 대상으로 연극 수업을 하고 있다. 원생들은 지난 3월 7일부터 유 전 장관에게 총 10회 이상 연극 지도를 받았으며 오는 5월 13일에는 같은 장소에서 연극 발표회를 가질 예정이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유 전 장관은 학생들과 저녁 식사도 함께하고 오후 9시가 돼서야 지도를 끝냈다. 그는 "처음엔 말 꺼내는 것조차 쑥스러워하던 아이들이 벌써 꽤 자신감 있게 자신을 표현한다"며 "연극을 통해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게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10대 청소년들은 연극 속에서 자신의 삶을 비춰보는 듯했다. 배역과 역할은 모두 지원을 받아 정했는데, 건달 역은 아무도 지원하지 않았다고 한다. 작가 역을 맡은 한승(가명)이는 이날 대사에 자신의 꿈 이야기를 섞어 넣었다. 유 전 장관이 대사 일부를 그렇게 고치자고 제안했다. 한승이는 관객을 향해 "제 꿈은 자동차 정비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 그게 실현될지는 모르겠지만…"이라며 자신의 대사를 풀어나갔다.

유 전 장관은 지난달 초 이곳을 처음 찾았다. 장관 재직 때 생각했던 봉사를 실천하려고 퇴임 직후 이귀남 법무부 장관에게 부탁해 이곳을 추천받았다. 6개월~2년 보호처분을 받은 10대 비행 청소년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연극반 지원자를 모집하자 순식간에 20여명이 몰렸다. 이 학교에서 연극반은 처음이다. 지난주까지는 검정고시 시험 때문에 주 1회만 지도했지만 이제는 매주 나흘씩 하루 4~5시간 연습한다. 공연이 다음 달 13일이기 때문이다. 학교 관계자는 "공부나 외우기라면 질색하는 아이들인데 긴 대사를 외우려 애쓰는 모습을 보면 신기할 정도"라고 말했다.

유 전 장관은 "처음 만났을 때 꿈이 뭐냐고 물었더니 절반 이상이 '없다'거나 '생각해본 적이 없다'고 말해 충격이었다"며 "이 아이들에게 꿈을 만들어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전국 8개 소년원과 지역 예술가들이 만날 수 있는 장(場)도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