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4.12 03:02
26년간 정극부터 실험극까지 변화무쌍한 인물들 창조해 "무대 즐기는 자유로운 배우"
11일 오후 조선일보사 편집동 7층 스튜디오. 제21회 이해랑연극상을 받은 배우 한명구(51·극동대 연극연기학과 교수)씨는 수상을 통보받은 날 적었다는 글을 읽어내려갔다. 소감은 연출가 오태석·임영웅·한태숙에 대한 감사를 지나고 "춥고 배고픈 연극 말고 고정급을 받는 삶을 살기 바랐다"는 부모님의 걱정과 믿음을 넘어 "누가 되지 않도록 더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으로 길게 요동쳤다. 그는 "배우는 이름·나이·인생이 없는 게 숙명"이라면서 "빨리 상에서 벗어나 내 자리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이해랑연극재단(이사장 이방주)과 조선일보사가 운영하는 이해랑연극상은 연출가 이해랑(李海浪·1916~1989) 선생이 추구한 리얼리즘 연극정신을 이어가는 국내 최고의 연극상이다. 수상자 한씨에게 트로피와 상패를 수여한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은 프로그램에 실린 인사말에서 "한명구씨는 26년 동안 정극부터 실험극까지 변화무쌍한 인물을 창조한 배우"라며 "진실하게 무대를 지키는 우리 배우들에게 격려와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한명구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 '부자유친' '흉가에 볕들어라' 등으로 기억되는 배우다. 임영웅 심사위원장은 "한명구는 타고난 신체조건과 감수성에 연극을 향한 열정까지 갖춰 최선을 다해 자신을 연소시키는 모범적인 배우"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사회를 맡은 배우 손숙이 "상대역으로서 한명구씨는 한참 연하(年下)지만 머리가 좀 벗어져서 무대에서는 나와 별 차이가 없어 보인다. 꼿꼿한 몸매와 중후한 목소리 때문에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를 공연할 때는 연인처럼 느껴졌다"고 말하자 식장은 웃음바다가 됐다.
스승인 송혜숙 전 서울예대 교수는 "명구는 1980년 처음 만났을 때 왜소하고 수줍음 많고 남 앞에 서는 걸 두려워해 '저 친구가 배우가 될까' 걱정했던 학생"이었다며 축사를 시작했다. 송 교수는 "한량부터 반항심 많은 사도세자, 꿈꾸는 돈키호테까지 이제 무대를 즐기고 몸과 영혼이 자유로운 배우가 됐다"면서 "하지만 햄릿, 리어 등 많은 배역이 남았으니 앞으로 50년 더 겸손하고 성실히 연기하라"고 격려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임영웅 극단 산울림 대표, 유민영 단국대 명예교수, 김방옥 동국대 교수 등 심사위원을 비롯해 이해랑 선생의 가족인 이방주 이해랑연극재단 이사장과 이민주·이석주·이유영·이상영·이은지·이사라씨, 배우 백성희·전성환·박정자·전무송·윤소정·김성녀·윤석화·손봉숙씨, 연출가 김삼일·이기도씨,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 박계배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이한승 실험극장 대표, 무대미술가 박동우씨, 극작가 홍원기씨, 차혜영 차범석연극재단 이사장, 임연철 국립극장장, 이대영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장, 박명성 전 서울연극협회장, 이종찬 전 국정원장, 김문순 조선일보 미디어연구소 이사장(이해랑연극상 운영위원장)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