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4.11 03:02
런던 최대공연장 바비칸센터, 12시간 동안 한국 작곡가 '진은숙 특집'
"내가 쓴 곡을 한자리서 10곡이나 들을 줄이야"
진은숙은 "지금껏 아무리 많아도 하루에 두 곡을 연주하는 것이 전부였는데, 한자리에서 10곡이나 들을 수 있을지는 몰랐다"고 했다.
오전 11시의 첫 음악회는 바비칸센터에 위치한 런던 길드홀 음악당에서 길드홀 음악원 재학생들이 진은숙의 작품 '이중 구속'과 '연습곡'을 연주하며 막이 올랐다. 바이올린과 전자 장치를 위한 '이중 구속'에서는 무대에 나선 바이올리니스트가 악기를 두드리고 매만지며 흔들고 연주할 때마다, 객석 한복판에 설치된 전자 장치 연주자가 그 소리를 변형하고 증폭하면서 2인극 같은 효과를 빚어냈다. 바이올리니스트 제나 셰리(Sherry)는 "연주자에게 애증의 대상인 악기를 마치 퍼즐이나 장난감처럼 다루면서 배우나 테니스 선수가 된 것처럼 연기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작품 해설을 곁들인 첫 음악회가 오후 12시 40분쯤 끝나자, 숨돌릴 겨를도 없이 오후 1시부터 바비칸센터의 대극장인 바비칸홀에서 열린 두 번째 콘서트로 향했다. 첫 출세작이 됐던 '말의 유희'(1991)부터 '이중협주곡'(2002), 관현악곡 '구갈론'(2009)까지 진은숙의 작품 세 편을 런던 신포니에타(지휘 스테판 애즈버리)의 연주로 연달아 쏟아냈다.
한국 옛 유랑 악단의 모습에서 착안한 '구갈론'은 장조와 단조, 빠름과 느림, 격렬함과 서정성이 엇갈리면서 시골이나 변두리 장터에 온 듯한 흥겨움과 서글픔을 동시에 연출했다. 반면 '말의 유희'에서 협연을 맡은 소프라노 서예리는 이 곡만 10차례 이상 소화한 현대음악 전문이지만 "작품 속의 7가지 노래를 서로 다른 색채로 표현해야 하는데다 저음과 고음을 극단적으로 넘나들기 때문에 노래할 때마다 기계체조 선수가 된 것처럼 어려움이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지난 2007년 독일의 명문 뮌헨 국립 오페라극장에서 초연한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를 오후 3시부터 영상 상영한 데 이어서 오후 8시부터는 다시 대극장에서 BBC 심포니 오케스트라(지휘 일란 볼코프)가 '칼라'(2000년), '바이올린협주곡'(2001년)', '로카나'(2008년), '생황협주곡'(2009년) 등 2000년대 진은숙의 관현악 4편을 연이어 들려줬다.
합창단과 오케스트라, 독창자까지 110여명이 한꺼번에 무대에 오르는 바람에 무대 전면을 객석으로 6m가량 확장하는 '긴급 공사'까지 벌였다. 진은숙의 대표곡 중 하나인 '로카나'에서 BBC 심포니는 초연 당시의 몬트리올 심포니(지휘 켄트 나가노)보다 한층 빠른 템포로 강인하면서도 직선적으로 작품을 재해석했다.
오후 6시부터 소극장에서 열린 작곡가와의 대담에서 런던의 청중은 작곡 습관이나 음악적 위기, 오페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초연 당시 일화까지 많은 질문을 쏟아냈다. 진은숙은 "첫 음표를 쓰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만 일단 악보에 적은 뒤부터는 빠르게 작업해나가는 편"이라고 했다. 진씨가 "오페라 초연 당시에 연출가와 전혀 생각이 달랐지만 그가 한 번도 고집을 꺾지 않는 바람에 무대는 지금까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고백하자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가끔은 "루이스 캐럴 원작의 주인공 앨리스와 동일시하느냐"는 마지막 질문에 진은숙은 이렇게 답했다. "제 꿈에서 저는 언제나 앨리스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