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오픈스테이지] 작품평이 엇갈리는 이유

  • 스포츠조선

입력 : 2011.04.07 11:03

직업의 특성상 '긴장'하는 순간이 있다. 연극이나 뮤지컬을 보고 나서 관계자들과 함께 차를 마실 때이다. 당연히 "이 작품 어떠냐"는 게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다. 제작자나 연출가들은 겉으론 "안 좋았던 점도 솔직하게 말해달라"고 하지만 몇차례 '학습'을 통해 그 자리에서 느낌을 100% 그대로 이야기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마음의 상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란 참 신기한 동물이다. 자신과 관계된 사안에 관해선 객관성을 유지하기 힘들다. 연극 뮤지컬도 마찬가지다. 자기가 제작하거나 연출하거나 주인공을 맡으면 모든 것이 좋게 보이기 쉽다. 온갖 고생 끝에 막을 올려놓았으니 얼마나 흐뭇하겠는가. 기껏 초대해 자리를 마련해줬더니 보고나서 한다는 소리가 '스토리는 엉성하고, 노래는 귀에 잘 안들어고, 무대는 초라하고…' 이면 '열린 마음으로 지적을 받아들이겠다'는 당초 언약과 달리 섭섭하고 기분이 상한다. 얼굴 표정이 슬쩍 바뀌면서 분위기는 '대략난감'으로 변한다.
처음엔 좀 의아했다. 아니, 남들에게 다 보이는 그런 단점들이 왜 보이지 않는걸까.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그들에게 작품은 자기 새끼나 다름없다. 산고 끝에 아이를 낳았는데 옆에서 얘가 왜 이렇게 못 생겼냐고 하면 좋아할 엄마 아무도 없다. 자기 배 아파서 낳은 아이이기 때문이다. 언젠가 한 제작자는 "얄미운 얘기를 들으면 '그럼 네가 한번 만들어봐'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온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주관성의 문제는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나타난다. "이 작품 정말 좋다, 저 배우 싹수가 있다"는 식의 추천을 듣고 가서 보면 별로일 때가 있다. 알고 보았더니 추천한 분의 친구가 연출을 했거나, 애제자가 출연한 경우가 실제로 있었다. 그분은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보니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였던 것이다. 웬만한 실수는 용서되고, 그 정도 해낸 게 대견해 보일 수 밖에 없다. 똑같은 대상이지만 바라보는 시선이 다른 것이다.
최근 유행을 타고 있는 아이돌 스타들의 뮤지컬 출연도 비슷한 경우다. 그들의 연기력이나 노래 실력에 대해 비판적인 평을 하면 팬들이 가만 있지 않는다. '우리가 보기에는 잘 하기만 하던데 당신이 뭔데, 우리 오빠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그런 악평을 하느냐'는 댓글이 줄을 잇는다.
자신의 경험과 취향과 결부될 때도 주관성이 머릿속을 강하게 지배한다. 과거 90년대 악극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중년 여성관객들은 누구나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흘렸다. 자신과 자신의 어머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쩌다 함께 따라온 그들의 자식들은 하품을 해대기 일쑤였다. "이건 정말 내 얘기야"라는 느낌이 들수록 역설적으로 객관성을 잃기 쉽다.
요즘 세종문화회관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광화문 연가'가 흥행대박을 터뜨렸다. 평단의 반응은 썩 좋지 않았지만 객석은 아주 뜨거웠다. 이문세의 히트곡을 들으며 젊은 날의 좋았던 한 순간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사실 예술작품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란 불가능하다. 평을 하는 사람도 주관적이기 때문이다. 만약 아이돌스타가 친조카라면 그가 아무리 연기를 못해도 혹평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자신의 판단과 느낌이 중요하지만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충분히 다른 견해도 가능하다는 열린 자세를 갖는 게 현명하다. 쉽지는 않지만 말이다. 엔터테인먼트팀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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