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3.31 03:10 | 수정 : 2011.03.31 09:48
제21회 이해랑연극상 받는 배우 한명구
당나귀 뒷다리 노릇부터 시작, '고도…' 블라디미르役으로 두각
"젊었을 땐 나를 드러내려 했다 이젠 인물을 드러내고 싶다"
수상 소식을 전할 때 그는 운전 중이었다. 학교로 가는 출근길이라고 했다. 자동차 핸들을 잡은 채로 나온 소감은 지나치게 '절제 모드'였다. "그래요? 훌륭하신 분들 많은데…."
이튿날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만난 배우 한명구(51·극동대 연극연기학과 교수)는 "소식 듣고 종일 얼떨떨했다"고 말했다. "놀랐고 기뻤지만 이 상의 무게만큼 '내가 받아도 되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빨리 잊고 평상심으로 돌아와야겠어요."
이튿날 서울 산울림소극장에서 만난 배우 한명구(51·극동대 연극연기학과 교수)는 "소식 듣고 종일 얼떨떨했다"고 말했다. "놀랐고 기뻤지만 이 상의 무게만큼 '내가 받아도 되나' 싶어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빨리 잊고 평상심으로 돌아와야겠어요."
제21회 이해랑연극상을 받는 한명구는 균형 감각이 좋은 배우다. 그가 섬기는 스승은 드라마를 강조하는 연출가 임영웅과 연극성에 집중하는 연출가 오태석. 이쪽 끝과 저쪽 끝을 섭렵한 것이다. 한명구는 "오태석 선생에게서는 거친 에너지를, 임영웅 선생으로부터는 섬세한 깊이를 배웠다"고 말했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그는 1984년부터 오태석이 이끄는 극단 목화에서 '10년 공부'를 하며 연기술을 다졌다. 데뷔작은 1985년 연극 '아프리카'. 같은 해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나귀 뒷다리 역을 맡았다. 당시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한다. '3년 안에 주인공 못 하면 연극은 그만두자.'
1987년 오태석은 한명구에게 주역을 세번 줬다. '자전거'의 윤서기, '춘풍의 처'에서 춘풍, '부자유친'의 사도세자였다. '부자유친'은 그해 서울연극제 대상을 차지했고 한명구는 신인 연기상을 받았다. "아파트 경비원을 해도 좋으니 배우는 접자"고 말렸던 아버지는 선배의 카페에서 먹고 자던 아들에게 자취방을 구해줬다. '한명구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서울예대 연극과를 졸업한 그는 1984년부터 오태석이 이끄는 극단 목화에서 '10년 공부'를 하며 연기술을 다졌다. 데뷔작은 1985년 연극 '아프리카'. 같은 해 '메밀꽃 필 무렵'에서는 나귀 뒷다리 역을 맡았다. 당시 이렇게 마음먹었다고 한다. '3년 안에 주인공 못 하면 연극은 그만두자.'
1987년 오태석은 한명구에게 주역을 세번 줬다. '자전거'의 윤서기, '춘풍의 처'에서 춘풍, '부자유친'의 사도세자였다. '부자유친'은 그해 서울연극제 대상을 차지했고 한명구는 신인 연기상을 받았다. "아파트 경비원을 해도 좋으니 배우는 접자"고 말렸던 아버지는 선배의 카페에서 먹고 자던 아들에게 자취방을 구해줬다. '한명구의 봄'이 시작된 것이다.
1994년 '고도를 기다리며'와의 만남은 또 하나의 중요한 전환점이었다. 한명구는 지난해까지 17년 동안 거의 매년 '고도…'에서 블라디미르를 맡았다. "깊이에 대해 고민한 시간이었어요. 같은 배역과 오래 동행한다는 건 배우에게 복입니다. '그 끝없는 기다림이 예술의 길과 다르지 않구나' 하는 위로도 받았지요." '고도…'의 박상종(에스트라공)은 한명구에 대해 "부드럽고 넉넉하다. 야구라면 어떤 공도 다 받아주는 듬직한 포수"라고 했다.
중저음이 매력적인 한명구는 차분한 대사, 폭발적인 힘, 순발력 등 장점이 많다. '내 사랑 히로시마' '덕혜옹주' '흉가에 볕 들어라'로도 기억되고 최근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돈키호테'를 공연했다. 영화로는 '인디안 섬머' '취화선'이 대표적이다. 배우로는 드물게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구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생각이 날아갈까 봐 연습 과정을 늘 기록한다"는 그에게 연기론을 캐물었다.
"젊을 땐 힘으로 해결하려 했어요. 나를 드러내려고 발버둥 친 겁니다. 연기를 알아갈수록 조심스러워졌어요. 무대에 선다는 것, 다른 인물이 된다는 것의 숙연함이 있습니다. 인물의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게 좋은 연기입니다."
연출가 이해랑(1916~1989)과 작업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배우, 수상 이후의 다짐을 묻자 대뜸 이해랑의 성대모사를 했다. "이거 봐 명구, 상 축하해. 내가 왜 준 줄 알어? 열심히 하라고 준 거야."
중저음이 매력적인 한명구는 차분한 대사, 폭발적인 힘, 순발력 등 장점이 많다. '내 사랑 히로시마' '덕혜옹주' '흉가에 볕 들어라'로도 기억되고 최근에는 명동예술극장에서 '돈키호테'를 공연했다. 영화로는 '인디안 섬머' '취화선'이 대표적이다. 배우로는 드물게 박사 학위를 받았고 학구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생각이 날아갈까 봐 연습 과정을 늘 기록한다"는 그에게 연기론을 캐물었다.
"젊을 땐 힘으로 해결하려 했어요. 나를 드러내려고 발버둥 친 겁니다. 연기를 알아갈수록 조심스러워졌어요. 무대에 선다는 것, 다른 인물이 된다는 것의 숙연함이 있습니다. 인물의 마음이 투명하게 비치는 게 좋은 연기입니다."
연출가 이해랑(1916~1989)과 작업한 적은 없다. 하지만 이 배우, 수상 이후의 다짐을 묻자 대뜸 이해랑의 성대모사를 했다. "이거 봐 명구, 상 축하해. 내가 왜 준 줄 알어? 열심히 하라고 준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