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보다 아름다웠던 불협화음

  • 통영=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3.30 23:42

'동서양 거장들의 만남' 통영국제음악제

불협화음 위에 새된 소리가 올라앉았다. 28일 오후 2시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 무대 한가운데 자리 잡은 현악기 연주자들이 활을 현에 붙이지 않고 툭툭 치며 둔탁한 소리를 냈다. 피아니스트는 건반 연주 도중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피아노 뚜껑 아래 속을 뜯었다. 무대 한쪽에 놓인 대형 스피커에서는 차 시동 거는 소리, 바삐 걸어가는 여성의 구두굽 소리가 쉼 없이 흘러나왔다. 지휘를 맡은 프랑크 올루는 연주 도중 마이크에 입을 댄 채 프랑스어 대사를 읊조렸다. 독일 출신 음악극의 거장 하이너 괴벨스(59)가 프랑스 작가인 알랭 로베 그리에의 소설을 음악화한 작품 '질투'였다.

28일 오후 통영시민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작곡가 진은숙(가운데)이 대표작‘말의 유희’연주가 끝나자 무대 위로 올라가 소프라노 서예리(왼쪽), 지휘자 프랑크 올루와 함께 인사하고 있다.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이어 한국이 낳은 세계적 작곡가 진은숙(50)의 대표작 '말의 유희'가 연주됐다. 바로크음악과 현대음악을 넘나드는 소프라노 서예리는 작곡가가 미카엘 엔데와 루이스 캐롤의 동화에서 따온 의미 없는 가사를 온몸으로 표현하며 스스로를 악기화했다. 고음으로 노래하다 저음으로 한 번에 쑥 내려가는 건 물론이고, 새가 따지듯 "짹짹짹짹짹" 소리를 내다가 "에이(A)! 비(B)! 씨(C)! 디(D)! 이(E)! 하하하하하"하고 웃었다. 제목 그대로 말(言)의 유희(遊戱)였다.

객석은 난해한 현대음악인데도 두 거장의 창작곡을 듣기 위해 서울·부산·광주 등 전국에서 몰려온 청중 400여명으로 붐볐다. 워낙 친숙하지 않은 곡이라 웬만한 애호가가 아니면 악장과 악장 사이를 구분하기도 어려운데 이날 모인 청중은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는 사소한 '실수'조차 하지 않았다. '상주 연주자' 제도 덕분에 음악제 기간 내내 통영에 머무는 진은숙은 객석에 앉아 있다 곡이 끝날 때마다 무대로 올라가 청중에게 인사했다. 괴벨스는 자신의 작품 '샘플러 모음곡'이 연주되는 중간 스피커에 문제가 있다며 "잠깐(Let's stop)!"을 외치고 손수 점검에 나섰다.

바이올린과 트롬본이 어긋나며 얽히는 불협화음, 시종일관 불안감을 일으키는 효과음, 클래식 악기와 전자음의 어우러짐은 생뚱맞으면서도 인상적이었다. 전문 음악당이 아닌 데서 오는 사운드의 한계가 아쉬웠지만 애초 이 음악제가 현대음악의 거장 윤이상을 기리는 데 기인한 것을 감안한다면 인구 14만명의 소(小)도시에서 현대음악의 진수를 맛본 이날 공연은 2011 통영국제음악제가 보여줄 수 있는 최선이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4월 1일까지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