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리뷰] '내가 까마귀였을 때'(극단 산울림)

  • 스포츠조선=김형중 기자

입력 : 2011.03.30 10:53

◇가족의 상처와 화해를 그린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 사진제공=극단 산울림
어릴 때 잃어버린 아들을 13년 만에 찾는다면 얼마나 기쁠까?
연극 '내가 까마귀였을 때'(고연옥 작, 임영웅 연출)는 10여년 만에 찾은 막내아들이 집에 들어서면서 시작된다. 재상봉의 감동이 파도처럼 지나고 난 뒤 분위기가 이상하다. 묘한 긴장감이 흐르기 시작한다. 고아원, 소년원을 전전하며 밑바닥 인생을 전전한 막내와 중산층 가정에서 '반듯하게' 성장한 누나, 형은 애당초 친해지기 힘든 것일까.
가족들에 대한 막내의 태도는 점점 적대적으로 변하고 그는 '어두웠던' 시절의 불량한 친구들까지 집으로 데려온다. 이산가족 재상봉의 휴먼 가족드라마는 이제 평범한 중산층 가정의 행복이 이유없는 폭력에 위협받는 드라마로 전환된다. 이런 가운데 부모의 태도, 누나의 태도도 석연치않다. 뭔가 숨기고 있다. 도대체 이 집안의 비밀은 무엇일까.
활화산처럼 분출된 갈등은 종착역을 향해 달려간다. 마침내 드러나는 진실의 전모는 슬프고 충격적이다.
작가는 IMF 사태로 해체된 가정이 상처를 딛고 일어서는 휴먼 계몽 드라마를 반전의 미학이 돋보이는 미스터리 기법에 담아 짜임새있게 재구성했다. 임영웅 연출은 상처의 극복과 화해의 드라마를 속도감있게 그려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한다. 막이 내리고도 긴 여운이 남는 것은 그 덕분이다.
막내 역을 맡은 신인 윤정욱은 상처받은 영혼의 내면과 외면을 에너지 넘치게 연기한다. 고인배 손봉숙 서은경 등 베테랑 배우들의 탄탄한 앙상블이 뒷받침되어서다.
'까마귀'는 막내가 밑바닥을 전전할 때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누구나 갖고 있는, 그러나 숨기고 싶은 상처를 표현한다. 작가는 에둘러 봉합하기 보다는 상처를 인정하고 털어놓고 이야기할 것을 권한다.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지라도 묻어두는 것 보다는 낫다.
5월8일까지 홍대앞 산울림소극장. (02)334-5915/5925 김형중 기자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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