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3.25 17:51
사회모순 풍자…폭소만발
김도현‧이율 더블 캐스팅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17세기 바람둥이가 21세기에 돌아왔다.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름다운 여인들에 대한 모독’이라고 부르짖으며 ‘마음이 시키는 대로 갈 테니 말리자 마라’고 외친다. 어렵게 구애해 결혼에 이른 아내마저 과감히 내팽개쳐버린 그는 곧 다른 여인을 향한 ‘작업’에 착수한다. 작업의 실패로 목숨을 잃을 뻔 했으면서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막간을 이용한’ 다른 작업도 사양치 않는다. 한 가지 약점이 있다면 생각과 행동만큼 생각과 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정도. 17세기 귀족사회 최대의 스캔들 메이커를 그린 연극 ‘동 주앙’이다. 하지만 그 이상이다. 그의 애정행각을 좇다보면 당시 사회모순에 대한 진한 조롱과 풍자를 만날 수 있다.
“비겁함을 가리려거든 더 고상한 껍질을 뒤집어 쓰거라.” 시대가 강요하는 규범이나 인습에 대놓고 반항하는 자유의지를 실현한 인물, 동 주앙의 철학은 확고하다. 연극 ‘동 주앙’은 17세기 프랑스 대표적 희극작가 몰리에르(1622∼1673)의 희곡 ‘돈 후안’이 원작이다.
동 주앙은 사실 그간 많은 예술작품들에서 원형적 이미지로 사용됐다. 돈키호테와 햄릿의 관계처럼 고뇌하는 파우스트와 대비를 이룬다. 당대엔 당연히 도덕관념이 없는 천하의 호색한으로 치부됐을 동 주앙의 이미지는 21세기에 와선 자신의 욕망에 대해 솔직한, 그저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더 적극적인 인물로 진일보한다. “그게 뭐가 잘못 됐는데”라고 되묻는 그를 설득할 논리는 아무것도 없다. 여기에 한 술 더 뜬다. “당신은 얼마나 덜 위선적인데?”
동 주앙의 캐릭터는 입체적이다. 그의 바람기는 속박을 넘어서려는 자유로 비쳐진다. 사로잡는 것에 사로잡히고, 끌리는 것에 끌려가는 것이 그의 자유다. 사회제도, 종교의 규범, 귀족의 권위 같은 것은 중요치 않다. 오로지 사랑할 수 있는 자유만을 숭배한다. 지나치게 앞서간 동 주앙의 행태는 결국 ‘천상의 신’이 그를 지옥으로 끌어내리는 파국을 맞지만 심각해지진 않는다. 구원을 거부한 그가 어디선가 작업 중일 것 같은 기대가 생겨서다.
1979년 국립극장에서 초연했다. 32년만의 재공연이다. 고전의 충실한 재현보다는 현대적인 분위기를 살리는 데 치중했다. 원작의 줄거리는 그대로 따왔으나 배우들의 성격과 말투, 대사에선 고전을 느낄 수 없을 만큼 현대적이다.
시종일관 웃을 수 있다. 동 주앙의 반박할 수 없는 청산유수의 사랑론을 듣는 것이 즐겁다. 주인을 향해 앞에서 맹세하고 뒤에서 손가락질 하는 이중성을 능청스럽게 연기하는 하인의 연기가, 시대를 초월한 보편적 세태인 듯 동 주앙의 버려진 아내를 비롯해 그를 둘러싼 여인들의 뻔하지만 기꺼이 빠져들게 하는 애정공세를 보는 것이 즐겁다.
뮤지컬 작품에서 두터운 관객층을 확보한 김도현과 이율이 동 주앙 역을 맡아 번갈아 무대에 오른다. 명품조연배우 정규수가 동 주앙의 하인 역을, 원로배우 권성덕이 아버지 역을 맡아 열연한다. 서울 명동예술극장에서 내달 3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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