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세상] "재벌가에 2억에 판 작품이 지금 100억대… 투기는 아니다"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1.03.25 03:04 | 수정 : 2011.03.25 05:46

'그림 로비 연루 의혹'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 인터뷰
판매 내역 첫 공개…
"재벌그룹의 여성들과 친분, H그룹엔 대형 조각 등 팔아…
그들은 취향 따라 그림을 살 뿐 사적으로 시중 들어준 적 없어"

홍송원 서미 갤러리 대표
"재벌 그룹 안주인과 경영진에게 많은 그림을 팔아 값이 오르기도 했지만, 그들이 투기를 목적으로 작품을 산 것은 아니었고, 내가 사적으로 접근해 시중을 들어준 것도 아니다."

오리온그룹의 비자금 조성 사건과 한상률 전(前) 국세청장 그림 로비 사건에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홍송원(58) 서미 갤러리 대표가 입을 열었다. 홍씨는 '그림 곁에 검은 돈 어른거린다' 기사가 나간 24일 오전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제안했다. 서울 가회동 자택에서 기자와 만난 홍씨는 "세간에 알려진 나와 재벌가의 관계에 왜곡된 부분이 많다. 재벌은 취향과 안목에 따라 그림을 산 것일 뿐 투기를 하려고 산 게 아니다"라며 재벌가와 친분을 쌓게 된 계기와 작품 거래 내용을 털어놨다. 화랑대표가 특정 재벌에 어떤 그림을 얼마에 팔았는지 구체적으로 밝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홍씨가 밝힌 재벌가의 '접촉 포인트'는 공교롭게도 모두 여성들이었다.

홍씨는 2008년 삼성 비자금 특검 때 삼성가 소유라는 의혹을 받았던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그림 '행복한 눈물'의 실소유주로 밝혀진 인물. 그는 "1990년대 초 서미갤러리에서 열었던 미국의 대지미술가 크리스토 전시회에 홍라희 전 리움미술관장이 한 유력 화랑 대표와 함께 관람하러 와 안면을 텄다"고 밝혔다. 그는 "홍 관장이 몇년 후 리히터 드로잉(150호) 등을 구매했는데 당시 가격이 약 1억2000만원으로 김환기 화백 60호짜리 가격과 비슷했다"면서 "당시엔 국내 작가 작품이 해외 작가 작품보다 비쌌기 때문에 이렇게 값이 오를 것을 기대하고 그림을 산 것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리히텐슈타인의 '행복한 눈물'에 대해 홍씨는 "내가 2002년 뉴욕 크리스티 경매에서 구입한 것이다. 컬렉터들에게 보이기 위해 홍 관장에게 부탁해 (2004년) 리움미술관이 개관할 때 한 달 정도 걸어놨다. 이건희 회장이 '만화 같다'며 좋아하지 않았다"면서 "결국 사건에도 휘말리고 애물단지가 돼 특검 끝나고 해외 갤러리에 팔아버렸다"고 말했다.

서울의 한 건물에 놓여 있는 루이즈 부르주아의 설치 작품 ‘스파이더’(1996).
홍씨는 H그룹에는 대형 조각 작품을 많이 팔았다. 그는 "문막 조각공원에 1990년대 중반 헨리 무어의 '마더 앤드 차일드(Mother and Child)'를 팔았고, 여주의 한 골프장에 설치됐던 헨리 무어의 '누워있는 여인(Reclining Woman)'과 높이 7m인 알렉산더 칼더의 설치작품 '오스카'도 내가 판 것"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중반 S그룹에 판매해 외부에 설치된 루이즈 부르주아의 조각품 '스파이더(Spider)'는 당시 가격으로 24만달러. 당시 환율로 2억원 정도였지만, 요즘 이 작품의 국제적 경매 가격은 약 100억원대이다.

홍씨는 이 밖에 1990년대에 개인 및 기업 고객들을 상대로 댄 플레빈, 도널드 저드, 에드워드 루샤, 리처드 페티본, 칼 앙드레, 아그네스 마틴, 사이 톰블리, 마크 로스코 등 미국 현대작가들의 작품을 주로 팔았다고 말했다. "또다른 S그룹 소장인 도널드 저드와 마크 로스코 작품도 서미에서 판 것이냐"고 묻자 홍 대표는 "여러 점 있으니 그중 한 점은 제가 판 거겠죠"라고 답했다.

홍송원 대표는 "나는 미술품 가격이 많이 오른 후에는 고객에게 권하지 않는다"면서 "1990년대 중반 에드워드 루샤의 그림은 4000만원을 넘는 것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난달 서울 강남의 한 갤러리 전시회에 나온 에드워드 루샤의 100호짜리 그림은 20억~30억원이었다.

이화여대 체육교육과 출신인 홍송원 대표는 지난 80년대 말부터 화랑을 시작해 매우 현대적인 작품과 새로운 작가를 국내에 소개했고, 이에 따라 재벌가 여성들의 단골 화상으로 떠올랐다. 홍씨는 삼성가와의 인연으로 '노이즈 마케팅 효과'를 봤다는 화랑가의 소문에 대해 "완전히, 완전히 마이너스 장사"라고 부인했다.

그림 곁에 검은 돈 어른거린다… '재벌과 갤러리의 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