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미술관 '소장품 리스트' 공개 안해

  • 곽아람 기자

입력 : 2011.03.24 03:07

비자금·탈세 의혹 키워… 외국선 매년 보고서 내

국내 재벌들이 미술품 관련 탈세·탈루 의혹을 자주 받는 이유는 이들이 무슨 그림을 얼마에 사는지 전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국내 최대 미술품 컬렉터인 삼성의 경우, 호암미술관과 리움미술관에 어떤 작품이 있는지 총체적으로 파악되지 않는다. 다른 곳도 마찬가지다. 소장작품 목록을 공개하지 않고, '신(新)소장품' 전시도 하지 않는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삼성의 호암미술관·호암갤러리, 대우의 선재미술관·아트선재갤러리, SK그룹의 워커힐미술관, 금호그룹의 금호갤러리, 대림그룹의 한림갤러리, 동아그룹의 동아갤러리 등 재벌 미술관·갤러리는 경쟁적으로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회도 활발히 가졌다. 해외 화상(畵商)들은 한국 재벌 부인을 만나려 경쟁했고, 프랑스의 한 일간지는 한국 미술시장을 '엘도라도'라 불렀다. 당시 재벌 미술관은 구입 작품을 기획전을 통해 공개했고, 일반인들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대우그룹의 해체로 재벌 미술관이 위축됐고, 2008년 삼성비자금 특검이 이어지며 '재벌과 미술'에 대한 시선이 악화되자 재벌의 미술관 운영은 폐쇄적 태도로 바뀌었다. 미술품 수집은 내밀한 거래로 바뀌었고 내용을 공개하지 않는 게 대세가 됐다. 한 미술계 인사는 "최근 재벌의 미술품 수집이 '명품 수집'처럼 되면서 최소한의 공공성도 사라졌다"고 말했다.

재벌 일가의 개인 소유 미술품과 미술관 소장품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고 뒤섞이는 경우도 문제로 지적된다. 삼성비자금 사건 수사과정에서 용인 호암미술관의 '비밀 그림 창고'가 발견된 것이 대표적인 예. 미술평론가 정준모씨는 "외국은 사립 미술관이라도 규모가 크면 매년 연례보고서와 도록을 발간해 구매 내역을 알리는 데 반해 국내에는 이런 것이 전혀 없다"며 "구입과정을 드러내기 싫다면 구입 후에라도 전시 등을 통해 제대로 공개해 공공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