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의 노래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3.24 03:01 | 수정 : 2011.06.14 17:11

草, 民草를 울린다… 삐리리이~삐리~잉
풀피리 연주 정재영·재룡 형제… 강춘섭 명인의 음원 복원해
"길거리 어떤 나뭇잎도 악기죠"

나뭇잎이 바로 악기로 변했다. 건물 1층 로비에 놓인 벤자민 화분에서 가지 하나를 떼어내 입술을 갖다댔다. "삐리리이~ 삐리~ 삐잉" 인생무상을 한탄하는 가락이 구슬프게 흘러나왔다. 소란스럽던 로비에서 일순 소음(騷音)이 사라졌다.

초적(草笛·풀피리) 연주자 정재영(37)·재룡(35)씨. 형제는 26일 오후 4시 국립극장 별오름극장에서 '제1회 초적발표회'를 연다. 풀피리 산조의 명인 강춘섭(姜春燮·?~?)의 초적 음원을 복원해 선보인다. 일제강점기인 1934~1935년 강춘섭은 '인생칠십고래희(人生七十古來稀)' '휘모리' 등 4곡을 유성기 음반으로 취입했다.

박새풀 같은 독초만 피한다면, 대부분의 나뭇잎은‘악기’가 된다. 잎맥이 있는 뒷면을 아래쪽으로 두고 잎을 입 안쪽으로 3~4㎜ 들여 살짝 문 뒤‘호’불면 소리가 난다. 물론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2007년 2월 서울시 무형문화재 제24호 풀피리 예능보유자인 박찬범 선생이 풀피리 독주하시는 걸 듣고 제자가 됐어요. 가야금, 대금, 장구 연주 등으로 시끌벅적하던 무대가 선생의 등장으로 고요해졌어요. 정적 가운데 들려오는 풀피리의 깊은 소리에 전율을 느꼈습니다."(재룡) 형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대중교통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박 명인을 찾아가 풀피리 부는 법을 배웠다. 잎을 불다 보면 찢어진 잎들이 양 무릎을 덮었다. 솜털에 윗입술이 해지기도 하고, 쉼 없이 불다 숨이 차서 기절하기도 했다. 3년 뒤 형제는 박 명인의 전수장학생으로 공식 등록됐다.

어릴 적 시골에서 그랬듯, 풀피리는 나뭇잎을 입술에 대고 휘파람 불듯 소리 내 연주하는 소박한 악기다. 그러나 그 '족보'는 대단하다. 1493년 조선 성종 때 쓰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 풀피리의 재료와 연주법이 상세히 기록돼 있고, '조선왕조실록' 연산군일기편에 풀피리를 좋아한 연산군이 전국에서 풀피리 악사를 발탁하라 명했다는 내용이 나올 만큼 사랑받았다. 상록수인 귤나무나 유자나무 잎이 풀피리로는 최고다.

형 재영씨는 경희대 우주과학과를, 동생 재룡씨는 카이스트 기계공학과 및 산업공학과(석사)를 졸업했다. "초등학교 때 선생님이 실험실 열쇠를 줘서 거기서 살다시피"한 재영씨는 현재 한마음국악예술단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물리학자가 꿈이던 재룡씨는 무기 제조 회사에 다닌다.


 

방금 딴 나뭇잎으로 풀피리를 부는 정재영(왼쪽)·재룡씨. /최순호 기자 choish@chosun.com

풀피리의 매력은 '변화무쌍'이다. "단소와 달리 풀피리는 지공(指孔·구멍)이 없어서 일정한 음을 못 내요. 대신 부는 사람에 따라 소리를 자유자재로 낼 수 있지요."(재영) "살아 있는 악기예요. 자연에서 따서 바로 불기 때문에 지구에 대고 훅~ 숨을 불어넣는 기분이 들어요."(재룡)

강춘섭 명인의 초적 복원은 2007년 겨울 시작했다. 국악 음원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강 명인의 유성기 음반 음원을 찾았다. 시간 날 때마다 수백 번씩 반복해 들으며 음을 악보에 옮겨 넣었다. 반 년을 고생해 복원에 완성한 첫 곡은 나라 잃은 민족의 암울하고 슬픈 현실을 노래한 '부세(浮世)'였다.

형제는 "강춘섭 선생이 살아 계시다면 몇날 며칠이고 붙들고 앉아 한 번에 떨어지는 소리, 빠르게 꺾는 소리를 어떻게 내는지 여쭤볼 텐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면서도 "우리만의 소리를 발견하는 기쁨이 있어 복원 작업을 멈출 수 없다"고 했다. 인터뷰가 끝나고 형제는 풀피리로 '베사메무초'를 불었다. 사랑을 부르는 새소리 같으면서도 애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