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화상 앞에서의 포복절도… 연극 '동 주앙'

  • 성남문화재단
  • 글=조만수(연극평론가)

입력 : 2011.03.15 16:22

뮤지컬과 오페라 등으로 대극장 무대에 섰던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의 '동 주앙'이 이번에는 연극의 옷을 입었다. 연극적 유희 속에 왜곡된 현실을 담아내는 연출가 최용훈이 몰리에르를 만나 더 큰 웃음과 신랄한 비판을 연극적으로 무대에 옮긴다. 동 주앙 역은 김도현과 이율이, 스가나렐 역은 정규수가 맡았다.

'동 주앙' 하면 대부분의 관객들은 뮤지컬을 떠올린다. 하지만 명동예술극장에서 3월 10일부터 4월 3일까지 공연하는 '동 주앙'은 프랑스 작가 몰리에르가 1665년에 발표한 연극 작품이다. ‘동 주앙’이라는 인물을 처음으로 문학 속에 등장시킨 것은 스페인 작가 몰리나였지만, 그의 이름이 오늘날 신화의 하나로까지 남은 것은 바로 몰리에르에 의해서다. 이후 ‘동 주앙’은 모차르트에 의해서 오페라 '돈 조반니'로 재탄생하기도 한다.

'동 주앙'에 대한 또 다른 선입견은 세기의 바람둥이 이야기인 만큼 연애담으로 가득 차 있을 것이라 짐작하는 것이다. 하지만 거의 스무 명가량 되는 배역 중에서 여배우는 단 세 명뿐이라면 기대만큼 연애담의 비중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어렵지 않게 가늠해볼 수 있을 것이다. 뮤지컬도 아니고, 연애 이야기도 그리 많지 않다고 해서 성급히 실망할 필요는 없다. 몰리에르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코미디 작가 중의 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몰리에르의 위대함은 그의 연극이 포복절도하는 웃음을 선사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웃음이 단지 공허한 웃음에 머물지 않기 때문이다.

몰리에르의 웃음은 숨겨진 인간의 본성을 드러낸다. 더불어 사회의 악덕을 드러낸다. 1664년 '타르튀프'의 공연이 금지되고, 그 이듬해 공연되었던 '동 주앙'마저 단지 15회의 공연 후 정치적 압력에 의해 극장에서 자진 철수하고, 몰리에르 생전에 다시는 공연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원작 그대로는 이후 150여 년간 공연되지 못했다. 한낱 바람둥이의 이야기가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리도 위험한 작품으로 여겨졌을까? 작품 속에서 동 주앙이 신을 모독했기 때문일까? 분명 몰리에르는 교회와 대립한 인물이었다. 하지만 코미디가 어떤 대상을 공격할 때, 그 공격이 직접적이라면 그 파장은 그리 크지 않다. 코미디의 공격성은 우회적일 때 더 파괴적이다.

'동 주앙'에서 표면적으로 비판받는 인물은 동 주앙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동 주앙의 방종을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비난하고 훈계하는 그의 하인 스가나렐의 위선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동 주앙의 불경과 방종보다는 경건하고 독실한 표면 속에 숨어 있는 위선을 더 공격하고 있는 것이다. 17세기 프랑스에서 종교가 이러한 위선의 대명사라 한다면 우리 시대의 위선은 과연 어떠한 것일까? 종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시대에 무엇이 종교적 신앙의 대상이 되었는지를 자문해본다면 그 답을 찾기가 어렵지 않다.

우리 시대의 왜곡된 현실을 연극적 유희 속에 즐겨 담는 최용훈 연출과 몰리에르의 만남은 웃음을 더욱 크게 하고 비판을 더욱 날카롭게 할 것이다. 코미디 속에서 웃고 있을 때, 그것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모습을 거기서 발견하기 때문이다. 우리 자신은 무엇을 위해서 살며, 그것을 어떤 방식으로 가리고 있는가? 우리는 어떤 위선자인가? 바람둥이가 아니라 할지라도 우리 모두 동 주앙이 아닌가. 그리고 그의 하인이자 분신인 스가나렐이 아닌가. 그리하여 우리는 정말 웃기는 존재들이 아닌가. 웃자, 우리 자신의 초상 앞에서 크게 웃어보자.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