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가와 게이 치명적 로맨스

입력 : 2011.03.11 22:14




-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

정성화·박은태 등 뮤지컬 스타 출연
손가락 하나하나 섬세한 연기 호평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철저히 단절된 공간인 감옥. 정치범 ‘발렌틴’과 성범죄자 ‘몰리나’가 한 방에 수감돼 있다. 사회주의 혁명가를 꿈꾸는 게릴라 발렌틴과 퇴폐적이고 화려한 사랑을 꿈꾸는 남성 동성애자 몰리나는 극과 극이다. 억압받는 대중을 구원하는 일에만 신경이 가 있는 발렌틴 앞에서 몰리나는 표범여인의 사랑을 말하는 영화 이야기만 늘어놓는다. 하지만 몰리나의 이야기에 점차 빠져드는 만큼 발렌틴의 적대감도 호의로 바뀌어 간다. 그 즈음 몰리나가 권력기관에 조종당하고 있다는 사실이 객석에 퍼지면서 긴장감이 고조된다. 배우 정성화의 미세한 동성애 연기가 주목받고 있는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다.
 
“인간을 견디게 해주는 건 사랑이라고.” 머리 안에 싸구려 감상이나 사랑타령밖에 없냐는 발렌틴의 경멸어린 핀잔에 몰리나는 그 사랑을 변론한다. 1970년대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 감옥 안. 미성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구속된 몰리나는 갇혀서도 세상 밖의 혁명에만 몰두하는 발렌틴과 마주보고 있다. 이들은 애증의 관계를 감추지 않는다. 접점도 없다. 하지만 그리 먼 시간이 지나지 않아 몰리나의 그 강변은 오직 단 하나의 진실이 된다.

냉철한 반정부주의자 발렌틴과 감성적인 동성애자 몰리나의 이해와 사랑을 다룬 연극 ‘거미여인의 키스’는 아르헨티나 반체제 작가 마누엘 푸익의 1976년 발표된 장편소설을 무대에 올린 것이다.

작품 속엔 세 가지 극단이 존재한다. 좌의 혁명가, 우의 동성애자 그리고 갇힌 공간 감옥. 어느 한쪽도 만만하지 않은 이 세 좌표를 한 무대 위에 올려놓고 당신은 무엇을 어떻게 선택할 수 있겠는가를 묻는다. 이들이 선택한 것은 사랑이다. 이조차도 극단이다. 살아남기 위한 뼈저린 절박함이다. 이들의 절실함은 배우들의 연기로 완성됐다. 대사는 물론 손가락 하나하나 움직이는 섬세한 몸짓들이 객석의 긴장을 최대치로 끌어올린다. 그 과정에서 동성애보다는 인간애의 원초적인 감성이 더욱 강렬하게 빛을 낸다.

극을 처음부터 끝까지 관통하는 것은 몰리나가 끊임없이 말하는 ‘표범여인’ 이야기다. 사랑하는 남자와 키스를 하면 표범으로 변하는 여인은 결국 발렌틴과 몰리나 그들의 이야기로 변해간다. 몰리나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키스를 받을 수 없는 불행한 여자 주인공에 자신을 이입시킨다.

비극적 결말이다. 발렌틴의 메시지를 들고 출감한 몰리나는 어디선가 날아든 총에 맞아, 발렌틴은 감옥에서 고문 끝에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처음 이들이 모습을 드러낼 때부터 예감되던 비극이었다. 발렌틴은 그제야 몰리나가 그에게 거미여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그리고 자신조차 거미 같은 존재였다는 것을 받아들인다.

뮤지컬 스타배우들의 성공적인 연극무대 연기로 호평을 받고 있다. 배우 정성화와 박은태가 ‘몰리나’ 역으로 출연해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동성애자로 변신, 치명적인 그들의 사랑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상대역인 ‘발렌틴’은 최재웅과 김승대가 맡아 냉소적인 게릴라의 비애를 절절하게 전한다. 서울 동숭동 아트원씨어터 1관에서 내달 17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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