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감옥에서 나를 구한 파이프 오르간"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3.02 00:00

독주회 갖는 김희성 교수… "삶의 무게와 깊은 울림, 청중에게 전해주고 싶어"

오르가니스트 김희성(50) 이화여대 교수에게 파이프 오르간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악기'였다. 1995년 서른넷이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교수가 된 그는 "대학이 비인기 종목 연주자를 교수로 뽑은 걸 후회하지 않게 해주겠다"는 다짐만으로 꽉 차 있었다.

파이프 오르간에 대한 생각이 바뀐 건 4년 전 하나밖에 없는 남동생이 뇌종양으로 세상을 떴을 때다. 암흑 같은 마음의 감옥에 갇힌 그에게 친구가 말했다. "네가 제일 잘하는 게 오르간 연주잖아. 그걸로 동생을 기려." 동생은 암으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음악만 들으면 기분이 좋다고 했었다. '아파하는 사람들을 위해 연주하자….' 그 후 파이프 오르간은 동생의 못다 한 이야기를 세상에 대신 들려주는 또 하나의 혈육이 됐다.

김희성 교수는“파이프 오르간은 사람과 참 많이 닮아서 건성건성 치면 대번에 눈치 채고 갈라지는 소리를 내기 때문에 눈치를 많이 봐야 한다”며 웃었다. /이명원 기자 mwlee@chosun.com

김희성 교수는 전형적인 '음악 입시생'의 길을 걸어왔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배웠고, 예원학교·서울예고를 거쳐 별다른 고민 없이 연세대 음대에 진학했다. 이북 출신 영락교회 장로였던 아버지는 유학을 앞둔 그에게 "교회에 봉사해야지"라며 파이프 오르간을 권했다.

1987년 미국 텍사스대 오스틴(UT Austin)에 진학했으나 동양인은 김 교수 혼자였다. '몸집 작은 동양 계집애'라며 백인들은 인사도 건네지 않았다. 그는 매일 밤 11시까지 연습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방법은 딱 하나, 지도교수의 주법을 달달 외워 따라 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수는 "그 소리가 아니다" "이 소리도 아니다"란 말만 했다. 레슨이 끝날 때마다 엉엉 울기를 3년. '소리'는 1990년 여름 갑자기 뻥 뚫렸다. 여느 때처럼 건반을 누르는데 자기도 모르게 '이 소리구나!'라는 걸 본능적으로 안 것이다. 교수는 "드디어 너의 소리를 찾았구나"라고 하며 백인 아이들의 레슨을 맡겼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자는 공연장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 청중을 등진 채 연주한다. 악기 자체가 공연장 벽면 구석진 자리에 붙어 있어서다. 무대 한가운데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돋보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1995년 법정 스님이 해준 말씀을 떠올린다. 학위를 따고 귀국했지만, 곧바로 채용이 되지 않아 마음 앓이를 하던 그에게 스님은 '사는 게 힘들지? 목표만 이루려니까 그런 거야. 하는 일을 즐겨. 그러면 어느 순간 올라서게 돼'라고 말씀해주셨다.

3월 7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김희성 교수는 파이프 오르간 독주회를 연다. 연주곡은 '동물의 사육제'. 51세의 생상스가 청중을 놀라게 하려고 만든 익살스러운 곡이다. '사자'는 야망으로 똘똘 뭉친 인간, '뻐꾸기'는 심장만 콩닥콩닥 뛰는 여린 영혼, '참새'는 지친 이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랑스러운 존재로 표현된다. 김 교수는 "오르간이 품고 있는 삶의 무게와 깊은 울림을 청중에게 전해주고 싶다"고 말했다.

▶김희성 파이프 오르간 독주회, 3월 7일 오후 7시 30분 세종문화회관, (02)780-5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