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티켓 강매·폭행·미용실 시중까지… 대학 음악 교육 '제자와 하인 사이'

  • 김경은 기자

입력 : 2011.02.22 00:11

음악계 "곪았던 상처가 터진 것"
[제자의 눈물]
맞고, 꼬집히고, 티켓 10~20장 팔아주고…
[스승의 항변]
학생 인생 책임지는 '1:1 교육'
일부 교수가 장점 퇴색시켜…
[대안은 없나]
학생이 지도교수 못 바꾸면 現체제로는 관행 못 바꿔

일러스트=오어진 기자 polpm@chosun.com

서울의 한 음대에서 성악을 전공하던 A씨는 지도교수의 레슨이 자기 목표와 맞지 않아 휴학계를 냈다. 다른 교수가 A에게 "다른 대학으로 편입해 제대로 공부하라"고 권했다. A는 편입 시험을 보러 갔다. 그러나 시험장에서 지도교수와 절친한 교수가 감독으로 들어온 것을 보고 몸이 얼어붙어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그 감독은 해당 지도교수에게 A가 편입 시험을 봤다고 알렸다. '지도교수를 저버린 배은망덕한 학생'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A가 학교로 돌아가자 지도교수는 남자 강사를 지도교수로 배정해줬다. 그는 '성추행 강사'로 소문난 사람이었다.

폭행과 폭언, 공연 티켓 강매, 집안 행사에 동원, 성희롱…. 제자 상습 폭행 등 비위 의혹이 제기된 김인혜 서울대 교수 사건을 계기로 음악계의 암울한 이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안이 불거질 때마다 대중이 놀라는 것과 달리 음악계에선 "곪았던 상처가 이제야 터진 것일 뿐"이라는 반응이 주를 이루고 있다.


이런 문제는 우선 '도제식 교육의 한계'로 지적된다. 도제식 교육이란 장인이 되기 위해 밑바닥부터 엄한 훈육을 받는 교육방식이다. 그러나 한방원 성신여대 교수(피아노 전공)는 "현재 대부분 대학의 교육방식은 일본식 도제교육이 아니라 '1 대 1 교육'"이라고 표현했다. "학생의 개인 사정까지 속속들이 알게 돼 친밀해지고, 학생의 인생을 교육으로 책임지는 게 '1 대 1 교육'의 미덕"이라며 "일부 교수가 '1 대 1 교육'의 장점을 퇴행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렇다면 1 대 1 교육이 자리 잡은 음악계에선 그간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일까.

허벅지에 고무줄 묶어 튕기기

음대 피아노 전공생인 B씨는 지도교수의 레슨을 받으러 갈 때마다 "오금이 저린다"고 했다. 연주가 미진하면 허벅지에 고무줄을 묶어놓고 튕기기 때문이다. B씨는 "아픈 것보다 수치심이 더 고통스럽다"고 했다. 교수가 남학생들의 젖꼭지를 잡아당긴 경우도 있다는 게 학생의 주장. 서울의 명문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한 C씨는 "습관적으로 당하는 일이라 시간이 지나면 그게 잘못된 일이란 생각도 안 든다"고 말했다.

음대 교수들에게 '공연'은 '승진'용

인문계·이공계 교수들이 논문으로 승진·승급 점수를 딴다면 음대 교수는 공연을 해야 한다. 이때 공연장 수준에 따라 점수도 달라진다. 예술의전당, 금호아트홀, 세종문화회관이 대부분의 학교에서 인정하는 A급 공연장. 학교 음악당 같은 곳에서 내실 있는 음악회를 할 수 없는 분위기다. 왕치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전문위원은 "교수들의 자존심 때문에 '티켓 매진' '성황' 같은 단어에 집착하게 된다"면서 "동원하기 쉬운 상대가 제자이니 학생들이 꽃돌이·꽃순이가 되고, 학생들이 티켓 파는 데 앞장서는 상황이 연출된다"고 말했다.

한 음대 성악과 교수는 실적을 위한 오페라 공연에 치중하느라 그의 제자들은 지도교수를 두고도 외부에서 따로 레슨을 받고 있다. 학생 D씨는 "가욋돈을 써 가며 레슨받아야 하는 처지가 답답하지만 졸업 후 일자리를 얻으려면 입을 꾹 다물고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누구의 제자라는 타이틀을 유지해야만 강사로라도 임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국악과 졸업생 E씨는 "선생님이 '팔아달라'고 직접 말씀하지는 않지만 '티켓 필요한 사람은 얼마든지 얘기하라'고 돌려 말한다"며 "분위기상 10~20장은 기본으로 팔아주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했다. 또 다른 졸업생 F씨는 "교수님 연주회 날은 제자들 5~6명이 따라다니며 미용실에서 화장할 때부터, 리허설, 공연 후 리셉션까지 시중든다"고 말했다.

과도한 신체 접촉

1 대 1로 이루어지는 실기 수업 중 행해지는 신체 접촉을 하소연하는 학생들도 있다. 가야금 연주자 G씨는 "가야금 연주법이 틀렸다며 교수님이 등 뒤에서 어깨를 껴안으며 '이렇게 연주해보라' 해서 불쾌했다"고 털어놨다. 악기 전공자인 H씨는 "교수님이 와인바에서 만나자고 하더니 스킨십을 시도해 거부했다"며 "교수님이 '네가 내 도움 없이 이 바닥에서 성공할 수 있을 것 같냐'고 면박을 주었다"고 말했다.

1 대 1 교육이 정말 문제?

그러나 이런 사태의 원인을 '1 대 1 교육'에 있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다. 1 대 1 교육은 개인의 음악적 역량과 한계를 파악해 기술과 표현력을 완성 단계에 이르도록 돕는 최적의 방법 중 하나로 꼽힌다. 유럽, 미국 등 음악 선진국에서도 마찬가지. 전문가들은 "일부 교수들이 친밀한 관계를 빌미 삼아 학생들에게서 음악 외의 것을 얻어내려는 수단으로 1 대 1 교육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한탄한다. 1 대 1 교육방식보다는 학생들이 지도교수를 바꾸지 못하는 관행이 더 큰 문제라고 음악계는 지적한다. 현행 음대 제도는 입학할 때 지도교수가 정해지면 '대부분' 대학원에 진학할 때까지 지도교수를 바꾸지 않거나 바꿀 수 없다. 교육의 효율성 때문이다. 한방원 교수는 "지도교수를 바꾸면 불이익을 당할까봐 벌벌 떠는 건 우리만의 특이한 현상"이라며 "지도교수가 왕으로 군림하는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앞으로도 음악계의 오명(汚名)은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