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2.16 18:30
2007년 가장 이지적이며 분석적인 베토벤 소나타 전집을 남긴 안드라스 시프가 베토벤 음악의 정수라고 부를 수 있는 후기 소나타 세 작품을 휴식 없이 연주한다. 서울과 대전에서 펼쳐질 이번 공연을 통해 시프가 설파하는 베토벤 소나타의 새로운 해석론을 만나보게 된다.
안드라스 시프의 베토벤 치클루스 내지 언급에 따르면 우리가 그의 베토벤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정확히 25년의 세월을 기다려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꾸어 말하자면 그가 베토벤을 연주할 수 있도록 준비했던 기간이 그렇게 오래 소요되었다는 뜻이다.
자국의 레이블 훙가로톤을 통해 데뷔한 시프가 거대 레이블 데카에 안착하기까지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투명하고 명징한 톤, 과시적이기까지 한 극한의 테크닉, 그리고 누구보다 밝은 색조를 지닌 이 전도유망한 피아니스트를 이 욕심 많은 회사가 가만히 둘 리 없었다. 데카는 그에게 많은 작곡가의 곡을 연주할 수 있도록 배려했는데 모차르트의 소나타 전집, 거의 대부분의 바흐 클라비어 작품집, 그리고 슈만과 슈베르트의 작품에까지 이르렀다. 비슷한 연배의 은둔형 피아니스트 라두 루푸가 동일한 회사에서 녹음했던 레퍼토리와 거의 비슷한 조건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데카는 이 명민한 피아니스트를 위해 손해를 무릅쓰고 많은 활동 반경을 보장했다.
“나는 1978년부터 2003까지 25년간 우선 바흐와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에 집중했는데 베토벤에 집중하기 위한 좋은 학습이 되었다. 그리고 마흔 살이 되면서 체계적이면서 집중적으로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구하기로 마음먹었다.”
모던 피아노로 연주하는 새로운 바흐상을 제시했던 그의 바흐 프로젝트는 한스 폰 뷜로의 표현대로 ‘음악의 신약성서’였던 베토벤의 소나타를 연주하기 위한 일종의 전초전이었다. 작곡가들을 통해 바로크 혹은 고전시대가 품고 있었던 예견된 베토벤의 길, 그리고 낭만시대 이후의 뒤안길에 대한 모든 탐색을 마친 그는 본격적으로 엔지니어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트 아이허와 손잡고 베토벤 소나타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해나가기 시작했고 2007년 ECM에서 이 거대한 프로젝트가 완성되었다.
“지금까지 난 항상 베토벤의 32개의 피아노 소나타가 히말라야 같은 거대한 산맥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 많은 산봉우리들은 - 어떤 것들은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높고 어떤 것들은 낮지만 - 자연스러운 유기체를 이루어 하나라도 떨어지면 완전하지 못한 것이다.”
특히 함머클라비어 소나타에 대한 메트로놈 지시를 악보 그대로 빠르게 구현하는 점은 자의적으로 받아들여졌던 해석론에 우어텍스트(Urtext)의 권위를 인정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반대로 댐퍼 페달을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강요하는 14번 소나타에서 시대적인 피아노의 특성으로 인해 댐퍼를 1/3 정도만 운용하는 점 등은 텍스트에 대한 연구의 결과물이 무조건 원전의 지시를 따르는 것만이 아님을 반증하고 있다. 이로써 감상자들은 시프의 소나타에 대한 심사숙고의 흔적을 감지할 수 있는 것이다.
폭발적이었던 지난 2008년의 내한 공연 이후 3년 만에 우리는 또다시 그가 구현하는 고밀도의 음향 입자를 만나게 되었다. 특히 시프가 각별히 생각하는 베토벤의 세 개의 후기 소나타는 중간 휴식 없이 지속될 예정인데, 서울(23일)과 대전(25일)에서 각각 동일한 프로그램으로 이루어진다. 또한 분석적인 이론으로 무장된 시프답게 2월 24일에는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자신이 개척한 베토벤 소나타의 새로운 세계를 열어줄 것이다. 어둑한 콘서트홀에서 한 점 빛으로 투사될 복잡다단한 후기 소나타의 교차된 푸가가 벌써부터 아련하다.
information
일시 : 2월 23일 20시
장소 :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문의 : 02-541-3183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