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를 말한다] 年공연 100회 'CEO 지휘자' 모시자마자 일 냈다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1.02.10 02:58

인천시향 새 예술감독 금난새
인천시향 창단 이래 첫 '매진사태'
유머 섞인 곡 해설로 인기 높아…
"음악회는 친절해도 음악은 진지…
예산 40억만큼 시민에 기여해야"

"이건 작년 8월 신세계백화점에서 했던 뮤직페스티벌 팸플릿인데, 서울 시내 한복판 백화점 1층 로비에서 환상적인 연주를 보여줬어요." "이달 18일 제주에서 시작하는 뮤직아일 페스티벌은 정부 예산 한 푼 안 쓰고, 7년째 국내외 실력파 연주자들을 불러 실내악 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금난새(64)의 밤색 서류가방에는 자신이 기획한 이런저런 음악축제 팸플릿이 가득했다. 그가 건네준 명함 영문 직함엔 'CEO 겸 예술감독'이라는 글자가 박혔다. 뒤쪽에는 인천시향,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 유로-아시안 코퍼레이션, 월드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 그가 예술감독으로 있는 이런저런 단체 이름이 줄줄이 적혔다.

작년 10월 인천시향 예술감독에 취임한 금난새는 '예술 CEO'를 내세우는 지휘자다. 지난 1999년에 창단한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는 매년 100회가량을 기업과 학교, 지역을 돌며 활발하게 연주활동을 하고 있다. "나랏돈 한 푼 쓰지 않고 해낸 겁니다. 청중이 오지 않으면, 기다리지 말고 찾아가야지요." 작년 12월에는 한화, 롯데백화점, 녹십자, 포스코건설 등의 후원으로 송년음악회만 열세 차례 열었고, 지난달엔 신년음악회를 여섯 번이나 치렀다.

‘클래식 전도사’금난새가 8일 낮 서울 광화문 사거리 한복판에서 지휘봉을 들고 섰다. 그는“친절한 음악 해설을 제공하지만 가벼운 음악으로 대중에게 영합한 적은 없다”고 했다. /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CEO 지휘자'를 새로 맞이한 인천시향은 작년 10월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대극장(1332석)에서 가진 첫 연주회부터 '사고'를 쳤다. "단원들까지 표를 구할 수 없을 만큼 매진이 된 거예요. 인천시향엔 이런 일이 한 번도 없었다네요. 청중들의 관심이 뜨거울 때, 변화의 계기를 만들어야지요."


가곡 '그네'의 작곡자 금수현의 아들인 금난새는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1977년 카라얀 국제콩쿠르에서 3위에 입상한 뒤, KBS교향악단과 수원시향, 경기필하모닉 상임지휘자를 거쳤다. 그의 최대 강점은 2009년 KBS 클래식 FM 인터넷 조사에서 정명훈, 카라얀과 함께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지휘자에 들 만큼 높은 대중적 인지도다. 금난새는 연주회 때마다 지휘봉 대신 마이크를 잡고, 청중들에게 그날 연주할 프로그램의 특징과 주요 대목을 유머를 섞어 친절하게 해설한다. 그런 '배려' 덕분에 금난새를 '마에스트로(지휘자)'가 아니라, '엔터테이너'쯤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다. 금난새는 맞받아쳤다. "지난달에도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을 연주하러 갔는데, 들어본 적 있는 분 손들라고 했더니 너덧명만 손든 거예요. 라틴어를 모르는 사람에겐 번역을 해줘야지, 라틴어로 바로 얘기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는 "크로스오버나 가벼운 음악으로 청중에게 영합한 적은 없다"면서 "내 레퍼토리는 언제나 진지한 음악이 중심"이라고 했다.

금난새는 올 신년음악회부터 변화를 시도했다. "연주 전에 청중들을 일으켜 세워 서로 악수부터 하게 했어요. 음악회는 비평하러 온 게 아니라 행복하려고 온 거잖아요."

인천시향의 올해 예산은 40억원쯤 된다. 지방 교향악단 수준으로는 그만그만한 수준이다. 그러나 그는 튀었다. "40억원이 적은 돈인가요. 좋은 콘서트홀이나 예산 타령을 하기 전에 그만큼의 기여를 시민들에게 하고 있는지를 먼저 물어야지요. 인천시향을 세계 최고, 국내 최고로 만들겠다고 말하기보다, 시민들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교향악단을 만들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