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엄마처럼 연기했는데… 보는 사람마다 자기 엄마래요"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2.07 02:19

3년 만에 돌아온 한·일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의 고수희
약하지만 강하고 웃지만 울고있는 뜨거운 母性…
연출가 정의신은 그녀를 "내 영원한 마돈나 마음의 여보"라 부른다

"누가 '그동안 본 연극·영화·뮤지컬을 통틀어 최고였노라'고 하는데 콧등이 시큰했어요. 어느 생(生)에 최고라는 작품을 내가 했다니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이에요. 내 인생에도 다시 오기 어려운 행운이겠지요."

국제전화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차분하면서 단단했다.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에서 개막하는 한·일 합작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용길이네 곱창집)'에 출연하는 배우 고수희(35)는 "걱정했는데 일본어 대사들이 다 몸속에 남아 있더라"면서 "이번엔 한 뼘이라도 더 나아가야 한다는 게 부담"이라고 말했다.

재일교포 극작가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야끼니꾸 드래곤'은 40여년 전 일본 오사카의 한 곱창집을 배경으로 재일교포 철거민 가족의 출렁이는 삶을 포착하는 드라마다. 한국 예술의전당과 일본 신국립극장이 공동 기획해 2008년 한·일 양국에서 릴레이로 초연한 이 작품은 일본에서 요미우리 연극상과 아사히 공연예술상을 휩쓸었고 한국에서도 주요 연극상을 차지했다. 이번이 3년 만의 무대이고, 20일까지 이어지는 일본 공연은 개막하기도 전에 매진됐다. 이번에도 일본 공연이 끝나면 한국 예술의전당에서 공연한다.

10여년 동안 주로 엄마 역을 맡아온 고수희는“모든 엄마는 독한 것 같으면서도 여리고 지혜롭다”고 말했다. /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무대는 일본 배우 한 명이 그동안 암으로 별세해 다른 배우가 들어온 것을 빼면 초연 그대로다. 둘째 딸의 결혼식을 앞둔 곱창집은 술잔이 오가고 장구와 아코디언 소리도 더해져 떠들썩하다. 지붕에 올라간 막내아들 도키오가 복잡한 가족 구성을 설명한다. 큰딸과 둘째딸은 아버지 용길(신철진)이, 셋째딸(주인영)은 어머니 영순(고수희)이 데려온 자식이고, 자신은 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이자 장남이라는 것이다.

'야끼니꾸 드래곤'으로 요미우리 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차지한 고수희는 "약하지만 강하고 웃지만 울고 있는 어머니의 모습을 탁월하게 표현했다"는 평을 받았다. 결혼, 불륜, 집단따돌림, 자살, 축제, 강제 퇴거, 이별 같은 재료로 속을 채운 이 연극에서 그는 거칠고 투박하며 희극적이지만 뜨거운 모성애를 가진 엄마였다.

"연기의 모델이요? 늘 저희 엄마였어요. 새벽시장에서 옷을 팔아 자식들을 키운 엄마의 말투, 행동, 버릇을 생각하며 작업했습니다. 그런데 엄마들은 다 비슷한가 봐요. 일본 배우들도 제 연기를 보고 '우리 엄마 같다'고 합니다."

2009년 결혼한 이 배우는 이번 설에 또 '불량 며느리'가 됐다. 지난해 설에 일본 극단이 제작한 연극에 출연하느라 시댁에 가지 못한 데 이어 올해도 일본에서 '야끼니꾸 드래곤' 연습에 붙잡힌 것이다. 고수희는 "시어머니께서 눈 흘기진 않고 응원해주신다"며 웃었다.

리어카를 탄 영순(고수희) 등 가족이 뿔뿔이 흩어질 때 눈사태처럼 벚꽃이 쏟아진다. 가슴을 쿵 울리는 마지막 장면이다. /예술의전당 제공
고수희는 1998년 대학로에서 연극 포스터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연극동네에 들어왔다. 그는 "이듬해 극단 골목길의 '청춘예찬'(박근형 작·연출)으로 데뷔했는데, '노느니 장독 깬다'며 시작한 연기"라고 했다. 첫 배역은 '간질 걸린 여자'였다. 고수희는 "겁 없이 연극을 시작했고, 뭘 하고 싶다는 생각도 없이 주어진 것을 열심히 했고, '플란다스의 개' '친절한 금자씨' 같은 영화에도 출연하며 정신없이 10여년이 흘러갔다"고 했다.

정의신은 고수희를 "내 영원한 마돈나, 마음의 '여보'"라고 부른다. 박근형은 "뚱뚱한 고수희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 연기 잘하는 그 여배우의 몸이 뚱뚱했을 뿐"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배우가 보기에 이들은 어떻게 같고 또 다를까.

"의외로 정의신 선생님은 슬픈 대목에서 코믹한 걸 좋아해요. 그래야 더 슬퍼지는 것 같습니다. 박근형 선생님과 비슷한 점이 아주 많지요. 차이라면 정확한 계산에서 출발하는 연출(정의신)과 즉물적인 현장에서 길을 찾는 연출(박근형)이랄까요."

고수희는 "올해부터는 내가 하고 싶은 작품을 할 것"이라고 했다. 그의 말마따나 '큰 모험'이다.

"'이건 절대 고수희랑은 안 어울려' 하는 배역을 맡고 싶어요. '햄릿'의 오필리어 같은. 그런데 이거, 제가 제작해야 이뤄지는 꿈 아닐까요?"(웃음)

▶3월 9~20일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1544-15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