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세나 NOW!] 아직도 '마케팅'으로 생각… 불경기엔 뒷전

  • 손정미 기자
  • 고은혜 인턴기자(서울대 사회학 4년)

입력 : 2011.01.31 03:02 | 수정 : 2011.01.31 08:53

[메세나 NOW!] [5·끝] 기업의 문화·예술후원 걸림돌
전문 인력이 없다… 홍보팀에 맡기거나 오너 취향 따르기도 광고 차원 넘어선 지속적 활동 어려워
세제 혜택도 미흡… "프랑스 수준으로 기부금 공제 늘려야"

서울 종로구 평창동 화정박물관에서는 지금 한·중·일의 에로틱 아트를 보여주는 'Lust'전(展)이 열리고 있다. 화정박물관은 원래 이번 전시를 작년 12월까지 열 계획이었으나 연구자들이 몰리면서 전시 작품을 바꿔 연장하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화정(和庭)'은 농약화학회사인 한국삼공 한광호 회장의 아호로 한 회장은 1999년 동아시아 전문 박물관인 화정박물관을 세웠다. 한광호 회장은 40년간 동아시아의 유물을 모아 왔으며, 화정박물관은 티베트 불교 회화인 '탕카'에 대해서는 세계적인 컬렉션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 회장은 이에 앞서 1997~98년 대영박물관에 100만파운드를 기부해 한국실이 마련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는 세계적인 박물관을 둘러보면서 중국과 일본 유물은 특별전시관이 있는데 한국 유물은 다른 유물들에 섞여 한두 점 초라하게 전시되는 것을 보고 마음 아팠다고 했다. 이처럼 묵묵히 메세나 활동을 이어오는 사례도 있지만 아직 국내 기업들의 메세나 활동은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한광호 한국삼공 회장이 세운 서울 평창동 화정박물관. /김현주 인턴기자(이화여대 도예과 3년)
상당수 기업이 아직도 메세나 활동을 마케팅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근 경제 위기를 맞아 메세나 활동에 대한 지원이 크게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 잘 나타난다. 한국메세나협의회가 2010년 회원사를 포함해 420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09년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은 1576억9000만원으로 2008년(1659억8500만원)에 비해 5.0% 감소했다.

외국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이와 다르다. 타이어 회사로 유명한 일본 브릿지스톤의 이시바시 쇼지로 회장은 1956년 고향인 구루메시(市)에 이시바시미술관을 세웠고, 이에 앞서 도쿄에도 브릿지스톤미술관을 세웠다. 이들 미술관의 소장품은 인상주의를 비롯해 유럽 현대미술까지 국립미술관에 손색이 없는 수작(秀作)들이다. 브릿지스톤은 일본의 경기 침체에도 불구하고 60년 가까이 예술 지원을 이어오고 있다.

국내에 메세나가 정착되지 못한 이유 중 하나는 기업에 전문 인력이 없는 것이다. 기업의 28.6%만이 전담팀이 문화예술 지원을 담당하고 있다. 대부분 홍보팀에서 메세나활동을 담당하면서 기업 홍보나 광고 관점에서 집행할 수밖에 없다. 정준모 전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실장은 "기업들이 문화예술을 지원한다면서 전문가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오너의 개인적 취향에 따르는 경향이 많다"며 "이 때문에 효율적이고 지속 가능한 문화예술 지원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한국 기업들은 영국 국립초상화미술관을 지속적으로 지원하면서 이 미술관에서 예술성을 담은 디자인 특별전을 열어 기업을 차별화하고 있는 미국 의류기업 갭(GAP)처럼 개성 있는 메세나 활동을 펼치지 못한다.

일본의 세계적인 타이어 기업인 브릿지스톤의 이시바시 회장이 고향 구루메시(市)에 세운 이시바시 미술관. 도쿄에도 미술관을 만들어 세계적인 거장들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정준모 국민대 초빙교수 제공
또한 기업들은 문화예술 지원에 소극적인 이유로 미흡한 세제 지원을 지적한다. 현재 문화예술을 지원하는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은 소득금액의 5% 한도 내에서 지원금을 비용으로 인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한국메세나협의회 이충관 국장은 "세제 지원을 산출하는 방식이 어려워 기업 내부에서도 혼란스럽다"며 "경영자들이 이해하기 쉬운 세액공제 형태로 가야 후원이 활성화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한나라당 이성헌 의원 등은 기업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문화예술 기부금 세액 공제율을 60%까지 늘리는 '메세나 활동의 지원에 관한 법률'을 발의했다. 이 법이 통과되면 법인세액이 100억원인 기업이 예술기부금으로 2억원을 지출한 경우 2억원의 60%인 1억2000만원을 감면받게 된다. 이는 기업의 예술기부금에 대해 가장 강력하게 세제 지원을 해주는 프랑스가 매출액의 0.5% 한도 내에서 예술 지원액의 60%를 세액공제해주는 것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의 용호성 과장은 "프랑스를 제외하고 우리나라의 세제 지원은 어느 나라 못지않다"며 "메세나 활동이 부진한 것은 기업들이 이윤을 사회에 환원하면서 문화예술보다 불우 이웃 돕기에 더 신경 쓰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숙명여대 김소영 교수(경영학부)는 "국가의 문화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문화예술 투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하며 제도적인 뒷받침도 더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 메세나(Mecenat)란?
문화예술 활동이 점점 활발해지면서 이를 지원하는 기업을 뜻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