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들의 아찔한 飛上… 중력을 조롱하다

  • 타이베이=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1.26 23:36

'태양의 서커스' 세 번째 내한작품 '바레카이' 대만 공연
신화 속 '이카로스'가 주인공… 600만이 본 아트 서커스
공중그네·후프·밧줄… 허공에서 날리는 '폭소탄'… 4월, 서울 잠실로 날아와

흰 날개를 단 소년이 무대에 툭 떨어졌다. 이카로스(Icaros)였다. 태양을 향해 너무 높이 날아올랐다가 날개를 붙인 밀랍이 녹아 추락했다는 그리스 신화 속 인물 말이다. 그가 떨어진 숲에서 펼쳐지는 아트 서커스 '바레카이(Varekai)'는 시작부터 곡예(曲藝)로 직행했다. 날개를 잃고 그물에 갇혔던 이카로스가 그 그물을 이용해 다시 날아오른 것이다. 짜릿한 하강과 상승이 반복되면서 몸의 무늬가 달라졌고, 그때마다 환호성이 번졌다.


 

태양의 서커스 공연 ‘바레카이’의 주인공 이카로스. 그를 가뒀던 그물을 이용해 하늘로 날아오른다.

25일 밤 대만 타이베이의 난강(南港)에 있는 '바레카이' 공연장.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씨였지만 2600석 텐트극장에는 빈자리가 없었다. '태양의 서커스(Cirque du Soleil)' 세 번째 내한공연으로 예정된 '바레카이'는 이곳에서 이카로스의 비행으로 무대를 열었다. 2002년 초연해 12개국에서 600만 관객을 모은 이 투어 공연은 극한의 몸으로 빚어내는 묘기들과 천진한 광대극으로 긴장·이완의 리듬을 이어갔다.

'바레카이'는 시각적으로 강렬했다. 높이가 최고 10.5m인 대나무형 구조물 300개로 만든 금빛 숲이 무대 뒤를 채우고 있었다. 숲 속 캐릭터들의 의상과 분장은 몸에서 풀잎이나 꽃이 돋아난 것 같은 식물성이었다. 무대 20m 위 공중에도 계단이 놓여 있었다. 곡예사들은 이 '하늘길'과 숲, 그리고 무대 바닥으로 등·퇴장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만들어갔다.

‘바레카이’는 캐릭터들의 의상과 분장, 무대 디자인에도 신비감을 보탰다. 뒤로 보이는 대나무 구조물 위에서도 곡예가 펼쳐진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1막은 누운 채 다리를 손처럼 이용해 사람을 던지고 받는 '인간 저글링', 양쪽 끝에 금속 추를 단 밧줄을 봉(棒)처럼 현란하게 돌리는 '물 유성(Water Meteors)', 4명의 여성 곡예사가 몸의 기하학을 보여주는 '3중 공중그네' 등으로 나아갔다. 중간 중간 우스꽝스러운 광대극과 관객 참여로 희극성을 보태는 장치는 여느 '태양의 서커스' 작품과 같았다. 2막은 어둠 속에서 반딧불이들이 날아다니는 듯한 효과로 출발했다. 광대가 "날 떠나지 마~"라고 노래할 때 조명으로 골탕먹이는 장면으로 또 한바탕 폭소탄을 날렸다. 두 명의 곡예사가 몸을 단단한 로프처럼 쓰는 '공중 밧줄', 머리와 입까지 이용하는 '초고속 저글링', 후프 하나에 의지해 허공을 날아다니는 '공중 후프'가 이어졌다. 150분짜리 서커스는 두 개의 러시아 그네에서 곡예사들이 점프하며 고난도의 묘기를 보여주는 '러시안 스윙'으로 힘있게 마침표를 찍었다.

'태양의 서커스'는 22개의 쇼를 공연하며 한해 매출 8억달러를 올리는 초대형 공연기업이다. '바레카이'는 지난 2007년 한국에서 공연한 '퀴담'에 비하면 짜임새가 느슨했고, 2008년 '알레그리아'보다는 볼거리가 많았다. 하와이 민속음악, 가스펠 등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음악은 폭이 넓고 이국적이었다. 하지만 이날 공연은 서너 장면에서 실수가 나와 만족도가 높지는 않았다.

6년째 이 쇼에 출연 중인 곡예사 레이산 가자로바(24·러시아)는 "공중(空中)이 두렵지만 사랑한다"면서 "1년에 집에 있는 날은 3주도 안 되지만 무대에서 내가 하는 일이 즐겁다"고 말했다. 리듬체조 선수 출신인 스텔라 우메(35·캐나다)는 "우리는 현대의 집시"라고 했다.

노란 바탕에 파란 줄무늬가 그려진 '바레카이' 텐트극장은 올봄 서울로 날아온다. '바레카이(Varekai)'는 집시들의 언어로 '세상 어느 곳이든(wherever)'이라는 뜻이다.


▶4월 6일부터 서울 잠실종합운동장 텐트극장. (02)541-62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