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관의 황금빛 화음… 귀가 즐거웠다

  • 김문경·음악칼럼니스트·'김문경의 구스타프 말러' 저자

입력 : 2011.01.26 23:29

반환점 돈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10곡 연주

서울시향이 작년 8월 시작한 말러 교향곡 전곡(10개) 연주 시리즈는 올해 음악계 최대 관심거리다. 지난달 30일 3번에 이어 4번(1월 14일), 5번(1월 21일)까지 연말연시 무대를 휘몰아친 말러 여정(旅程)이 반환점을 돌았다. 국내의 손꼽히는 말러 전문가 김문경씨가 지난 5개월간 서울시향 말러 연주를 중간점검한다.

지난 21일 저녁 금관의 황금빛 화음이 서울 예술의전당을 뜨겁게 달궜다. 정명훈<사진>이 지휘하는 서울시향 말러 교향곡 5번 피날레의 마지막 부분이 끝나자 객석은 환호로 가득 찼고 음악 애호가들의 트위터와 블로그는 연주회 후기로 들썩였다. 4악장 '아다지에토'에서 현의 응집력이 최상급은 아니었으나 전체적인 완성도를 해칠 정도는 아니었다.

이제 후반을 향해 가는 서울시향의 말러 시리즈가 지니는 중요한 의미는 향상된 연주력과 개성적인 표현으로 압축될 수 있다. 10여년 전, 국내 '말러 붐'의 효시로 언급되는 부천시향 말러 시리즈는 의욕과 열정은 퇴색될 수 없지만 곡에 따라 연주의 부침(浮沈)이 심했다는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에 비해 서울시향은 국내 교향악단의 말러 연주에서 고질적인 문제점으로 거론되던 금관의 실수를 대폭 줄였다는 것만으로도 높은 평가를 받을 만하다.

단순히 대형 실수를 줄인 정도를 넘어서 몇몇 단원은 출중한 개인기를 선보였다. 지난달 30일 말러 교향곡 3번 3악장 중간부의 멋진 트럼펫 솔로는 '선물'이요 '축복'이었다. 세계 정상인 베를린 필도 자칫 실수가 벌어지는 4악장의 트롬본 파트도 탁월했다. 리카르도 샤이가 지휘하는 로열 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듣는 듯한 클라리넷 파트의 두각에 두 귀가 즐거웠으며, 4번 3악장의 가슴 절절했던 오보에 솔로는 지금도 잊을 수 없다.

향상된 연주력을 바탕으로 정명훈의 개성이 마음껏 발휘되었다는 점 또한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느린 부분에서는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폭넓은 템포를 보이다가도 빠른 부분에서는 속도를 붙여 압도적으로 휘몰아치는 해석이 지속적으로 눈에 띄었다.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말러가 음반으로 출시될 때 아마도 이 점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지니지 않을까 싶다.

말러의 분열적이고도 다층적인 내면을 그대로 드러내면서 동시에 독특한 디테일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정명훈의 해석은 이탈리아의 명(名) 말러 지휘자 주세페 시노폴리의 스타일과 닮았다. 말러를 얌전하고 세련되게 해석하려는 현재의 추세에 비추어볼 때 이는 다분히 복고적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명훈의 두드러진 개성이 한껏 발휘된 교향곡 1번에서는 군소리 없는 높은 성과를 일궈냈지만 템포가 눈에 띄게 이완됐던 2번 1악장이나 3번 1악장에서는 애호가마다 선호가 엇갈렸다. 앞으로 각 교향곡의 개시 악장에서 더욱 확신 있는 해석과 연주가 필요할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만족스러웠던 공연은 지난 14일 연주한 교향곡 4번이었다. 1악장은 충분히 정제되고 단아했으며, 3악장은 그 어떤 연주보다도 탐미적이고 황홀했다. 마지막 음이 사라지고 한참 동안 침묵을 지킨 청중들의 성숙한 인내심까지 더해진 완벽한 공연이었다. 말러 음악에서 가장 빛나는 순간은 금관 위주의 시끄러운 부분이 아니라 조용하고 내면적인 부분이다. 미세한 음률에 세공을 더하는 서울시향의 말러가 앞으로 더욱더 기대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