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연극 '오이디푸스'… 묵직한 비극 그러나 세련된 연출과 연기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1.26 23:31

시소는 이쪽 끝과 저쪽 끝이 다 즐겁다. 연극 '오이디푸스'(연출 한태숙)는 묵직한 희랍비극과 현대적 재해석 사이를 왕복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시소 같았다. 꼼꼼하게 저울질한 균형감각이 무대를 휘감고 있었다. 이렇게 조화로우면서 세련된 연극이 몇 년 만인가. 중극장 무대에서 미학을 완성한 보기 드문 사례라서 더욱 반가웠다.

연극 ‘ 오이디푸스’에서 오이디푸스(이상직·왼쪽)에게 크레온(정동환)이 신탁을 전하고 있다. /국립극단 제공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창단공연 '오이디푸스'는 먼저 시각적으로 강렬하다. 배우들은 경사 11도의 삼각형 무대 위에서 움직이거나 높이 9.5m인 수직의 절벽 구조물에 매달려 있다. 위태로운 현실을 상징하는 장치다. 테베의 왕 오이디푸스(이상직)는 만연하는 역병(疫病)과 싸우고 있고, 그가 파견한 크레온(정동환)이 받아온 신탁(神託)은 "오랜 죄악으로 나라가 오염됐다"고 말한다. 오이디푸스는 선왕(先王)의 살인자를 밝혀내겠다며 복수를 다짐한다. 이 순간 원일의 아쟁 연주는 비극을 예고하듯 흐느낀다.

재앙의 뿌리는 오이디푸스 자신이다. 그가 아버지(선왕)를 살해하고 어머니 요카스타(서이숙)와 결혼한 자라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이 연극은 격렬하게 요동친다. 짐을 진 노파처럼 구부정한 예언자 테레시아스(박정자)가 "두려움을 모르는군. 눈먼 자는 당신이오!"라고 경고해도 오이디푸스는 추적을 멈추지 않는다.

연극 '오이디푸스'는 품이 넓고 표면장력도 셌다. 한태숙은 '레이디 맥베스' 이후 10여년 만에 해외에서도 손색이 없을 만한 대중적인 희랍비극을 만들어냈다. 이상직은 운명의 검은 쓰나미를 온몸으로 견디는 광기(狂氣)의 순간을 빚어냈다. 대체불가능할 것 같은 연기를 보여준 서이숙·박정자를 비롯해 배우 앙상블도 수준급이었다. 무대 전체를 캔버스로 삼은 이영란의 분필 그림은 이 연극의 부피감을 키웠다. 상징적인 무대 디자인은 이태섭의 솜씨였다. 조명(김창기)이 바닥에서 위로 향할 때 절벽 구조물에 생기는 그림자는 현악기 같았다.

마지막 순간, 짐승처럼 울부짖으며 자기 눈을 찌른 오이디푸스가 말한다. "신이여, 이제 만족하십니까? 운명 앞에서는 누구나 장님일 뿐이로구나. 그러나 기억해라. 이 두 눈을 찌른 건 내 손이다."

▶2월 13일까지 서울 명동예술극장. (02)3279-22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