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이 젖네… 슬프고도 황홀한 사랑의 몸짓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1.20 03:09

10주년 맞은 창작 발레 '인어공주'
바닷속 캐릭터, 만화서 막 건져올린 듯 "물거품 장면? 와이어를 쓰는데… 비밀"

올해 유난히 춥게 느껴지는 겨울이 이곳만 비켜간 것 같았다. 지난 14일 오후 한국예술종합학교 발레 연습실에서 만난 무용수들은 땀범벅이었다. 창작 발레 '인어공주'(안무 김선희) 공연을 1주일 앞두고 몸도 마음도 바빴다. 토슈즈가 바닥에 부딪쳐 나오는 따닥따닥 소리 위로 '인어공주' 음악이 잔잔하게 차올랐다. 한 장면이 끝나고 음악이 멈추면 김선희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교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턴아웃(무릎부터 발끝까지 몸 바깥으로 여는 자세)!" "등 곧게 펴고 팔꿈치 내려주세요"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을 천천히!"….

발레‘인어공주’에 출연하는 박세은(왼쪽)과 김명규. /김선희발레단 제공
김선희발레단의 '인어공주'가 21~23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10주년 무대를 만든다. 먼저 눈이 즐거운 공연이다. 인어·새우·꽃게·가재·산호·해파리·문어 같은 바닷속 캐릭터들이 등장한다. 디즈니 애니메이션에서 건져 올린 것 같은 풍경들이다. 1막에서 배가 등장하는 장면, 2막의 화려한 궁중 파티, 인어공주가 사람이나 물거품으로 변하는 대목이 볼거리로 꼽힌다.

인어공주는 폭풍우로 난파된 배에서 왕자를 구해주면서 사랑에 빠진다. 마법 문어를 찾아간 공주는 '왕자와 사랑을 이루지 못하면 물거품으로 변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여 두 다리를 얻고 대신 목소리를 잃는다. 왕자가 인어공주에 입맞춤하려는 순간 마법 인어가 사랑을 가로채고 인어공주는 물거품이 된다. '백조의 호수'를 닮은 비극이다.

'인어공주'는 해마다 한예종에 재학 중인 발레 기대주들이 출연해왔다. 10주년을 맞아 올해는 초대 왕자였던 김현웅(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을 비롯해 이용정·이동탁·김명규(이상 유니버설발레단) 등 졸업생들까지 한 무대에 선다. 불가리아 바르나콩쿠르와 스위스 로잔콩쿠르 등을 휩쓴 박세은, 서울국제무용콩쿠르 1등을 차지한 김민정도 만날 수 있다. 러시아의 드미트리 파블로프가 작곡한 음악을 43인조 오케스트라(지휘 김훈태)가 연주한다.


간판스타는 역시 김현웅(30)·박세은(22)이다. 김현웅은 신체조건부터 '왕자'다. 얼굴이 작고 목과 팔다리가 길어 몸의 비율이 좋고 체형도 역삼각형꼴이다. "해파리였던 (이)은원이가 인어공주로 '승진'한 것을 보면서 세월을 느낀다"는 그는 "처음 출연했던 전막(全幕) 발레라 첫사랑처럼 애착이 간다"고 말했다. "기쁨과 슬픔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준 작품이에요. 인어공주를 떠나보내고 슬퍼하는 마지막 장면이 특히 좋아요."

박세은은 외모·체형·기술·표현력에 강인한 성격까지 두루 지니고 있다. 그는 "'인어공주'는 기술보다 표현력이 생명인 작품"이라고 했다. "사람이 아니고 인어라서 고민이 많아요. 팔 동작·표정·연기, 모두 나만의 언어를 만들어 아이들에게 아름다운 환상을 심어주고 싶어요." 어떻게 물거품이 되느냐고 묻자 "와이어(wire)를 쓰는데 나머지는 비밀"이라며 입을 막았다.


▶박세은·이용정·김민정·이은원이 인어공주, 김현웅·이재우·이동탁이 왕자 역을 나눠 맡는다. 21~23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 (02)3216-11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