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러 교향곡 No.5… 당대엔 연인의 노래, 후대엔 죽음의 노래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1.01.19 23:15

말러가 부인 위해 쓴 곡, 9·11 후 앞다퉈 연주
로버트 케네디 장례, 영화 '베니스의 죽음'까지… 고르바초프도 감동… 내일 서울시향 공연

1991년 12월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 부부가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지휘하는 말러 5번 교향곡 연주회를 찾았다. 페레스트로이카를 이끌던 고르바초프는 그해 여름 군부 쿠데타를 겪으면서 별장에 연금됐고, 옐친에게 권좌를 넘겨주기 직전이었다. 이날 말러 연주는 강한 인상을 줬던 모양이다. 고르바초프는 훗날 '우리 모두의 열정과 고뇌가 담긴 페레스트로이카의 시대를 겪고 있는 상황에 대한 깊은 공감을 말러의 음악에서 느낄 수 있었다'고 썼다. '왜 말러인가'를 쓴 영국 음악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Lebrecht)는 "말러 음악 속의 무언가가 소비에트연방의 공산당 서기장이라는 껍데기를 뚫고 들어가 고르바초프라는 인간의 무의식을 건드린 것"이라고 해석했다.

지난 14일 열린 서울시향의 말러 교향곡 4번 연주회. /서울시향 제공

정명훈이 지휘하는 서울시향의 말러 시리즈가 21일 말러 교향곡 5번을 연주한다. 말러 교향곡 가운데 가장 많이 연주되는 작품으로 꼽히는 5번은 특히 4악장 아다지에토가 유명하다. 번스타인은 존 F 케네디 미국 전 대통령의 동생인 로버트 케네디 장례식장에서 '아다지에토' 악장을 지휘했고, 9·11 테러 이후 미국의 오케스트라들은 말러 5번을 앞다퉈 연주했다. 말러가 작곡할 당시엔 막 결혼한 아내 알마에 대한 연서(戀書)로 알려졌던 악장이다. 말러 교향곡 대부분이 그렇듯 사랑과 죽음이라는 상반된 감정을 동시에 담아냈다.

이 악장을 들으면서 영화 마니아라면 이탈리아 감독 루키노 비스콘티의 '베니스의 죽음'을 떠올릴 수 있다. 베니스로 휴가를 떠난 초로(初老)의 음악가가 그곳에서 만난 미소년과의 사랑 때문에 페스트가 창궐한 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끝내 목숨을 잃는다는 줄거리다. 하프와 현이 연주하는 4악장 '아다지에토'는 영화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주인공을 따라다니며 사랑과 죽음의 드라마를 이끌어간다.

말러 교향곡 못지않게 관심을 끄는 것은 고교생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모차르트 협주곡 20번이다. 베토벤, 차이콥스키, 라벨, 무소륵스키 등 레퍼토리를 확대하고 있는 조성진이 이 어둡고 비극적인 모차르트의 첫 번째 '단조 협주곡'을 어떻게 소화할지 주목된다. 서울시향의 말러 시리즈는 오는 10월 정명훈이 지휘하는 말러 6번으로 이어진다. 정명훈은 다음 달 11~12일 도쿄 NHK홀에서 NHK 심포니와 함께 말러 3번을 연주한다.


서울시향 말러 2011 시리즈 2, 21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정명훈 지휘, 조성진 협연. 1588-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