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함으로, 그저 나와 다름없는 한 사람으로…

  • 성남문화재단
  • 글=최윤우(월간 '한국연극' 편집장)

입력 : 2011.01.17 10:49

연극 '오이디푸스'

세계적으로 쉼 없이 공연되는 '오이디푸스'가 재단법인 국립극단의 첫 번째 작품으로 무대에 올라간다. 이 작품이 예술가들은 꼭 한 번 공연하고 싶고, 관객들은 한 번쯤 만나고 싶은 이야기로 여겨지는 것은 대서사시를 중심으로 신화와 삶의 원형을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테베의 왕 라이우스는 왕비 요카스타가 낳은 아들이 자신을 죽이고 왕이 될 것이라는 신탁이 두려워 출생 직후 아이의 발목을 뚫어 밧줄로 동여매고, 산으로 데려가 죽이게 한다. 하지만 임무를 맡은 시종은 그를 죽이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그 아이는 코린트 왕의 양자로 자란다. 어느 날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하리라’는 신탁을 받은 오이디푸스는 코린트 왕을 친부로 생각하고 방랑길에 오른다. 유랑 중 어떤 노인과 하인들을 싸움 끝에 죽이는 일이 생기고, 이어 테베를 위협하던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면서 비어 있던 테베의 왕좌에 올라 전왕의 왕비와 결혼한다. 나중에 밝혀지는 사건의 전모. 즉 오이디푸스가 방랑길에서 죽인 노인이 다름 아닌 자신의 아버지이고, 자신은 결국 어머니와 결혼해 자식까지 낳았음이 밝혀지고, 어머니이자 아내인 왕비는 자결,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뽑고 테베를 떠난다.

오이디푸스는 부르튼 발, 퉁퉁 부은 발이란 의미를 가진 그의 이름처럼 굴곡진 인생의 험로를 걷는다. 운명의 손길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지만 도리어 그 운명의 그물에 사로잡힌 존재, 무한한 가능성만큼 극복할 수 없는 치명적인 한계를 지닌 인간. 그에게 신탁이 없었다면 어땠을까. 그렇다면 애초에 라이우스에게 버림받을 이유도 없었고, 코린트 왕의 양자가 되지도 않았을 것이며, 이후에 신탁을 비켜가기 위해 유랑을 떠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결국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해 아이를 낳았다는, 인간으로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비극적인 삶의 여정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만약,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가 이렇듯 신의 영역을 침범할 수 없는 나약한 인간 존재를 부각하는 것으로만 머물렀다면 이 작품이 세계적인 고전으로 남지 않았으리라. '오이디푸스'가 그리스 비극의 대표작으로 여겨지는 이유는 표면적인 운명의 수레바퀴를 넘어서는 능동적인 저항 의식이다. 보이는 것이 전부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안 순간, 자신의 눈을 뽑아버린 오이디푸스, 그는 장님이 되어 고행의 길을 떠나는 순간 비로소 영웅으로 다시 태어난다. 운명에 체념하는 수동적인 행위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걸어가기 때문이다. 그것이 처절한 고행의 시작일지라도.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는 그동안의 작품들과는 사뭇 다른 관점으로 다가갔다. 영웅적인 오이디푸스를 단지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로 그린다. “그리스 비극이라는 형식을 버리고, 장엄하고 거룩한 이야기에 압도되어 상투적인 영웅의 표상을 제시하지 않는다”고 밝힌 연출가 한태숙은 이번 작품이 그저 평범한 한 남자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전한다. 멀게만 느껴지던 비극의 영웅이 아닌 소소하고 일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우리와 다를 것 없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 국립극단의 '오이디푸스'가 관객과 새롭게 만날 수 있는 지점이다. 
  • C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