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1.01.13 03:03
서울시향 예술감독 정명훈
시의회서 전용홀 예산 삭감되자 "악기도 없이 연주하라는 거냐"
12일 만난 정명훈 서울시향 예술감독은 약간 들떠 있었다. 서울시향이 세계 최고 클래식 음반사로 꼽히는 도이치 그라모폰과 3~5년에 걸쳐 매년 음반 2장씩을 내고 전 세계에 배급하는 계약 체결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었다. 정명훈은 "작년 유럽 투어에서 서울시향이 좋은 평가를 받았고, 또 앞으로 훨씬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이번 계약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서울시향은 작년 5~6월 베를린과 프라하 등 유럽 4개국 9개 도시 순회연주에서 "월드 클래스 오케스트라의 연주"(베를리너 모르겐포스트) "드뷔시의 '바다'는 어디에도 뒤지지 않을 만큼 높은 수준"(베를리너 차이퉁)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서울시향의 DG 음반은 올해 2종이 나올 것으로 보이며, 작년 녹음한 말러 1번과 2번, 유럽 공연 레퍼토리인 라벨·드뷔시 등이 후보에 올라 있다.
하지만 나쁜 소식도 있다. 서울시향의 전용 상주홀이 들어설 '한강예술섬' 예산이 지난달 서울시의회에서 전액 삭감됐기 때문이다. 정명훈은 전용 홀 얘기가 나오자 표정이 어두워졌다.
"2005년 서울시향에 올 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일로 약속받은 것이 있다. 전용 홀 건립이 대표적이다. 오케스트라에 전용 홀은 악기나 마찬가지다. 악기 없이 연주하라고 할 수 있나."
서울시향이 작년 8월부터 매진 행진을 기록 중인 '말러 교향곡 시리즈'도 공연장에 따라 평가가 달라질 수 있다. 서울시향이 지난달 29일과 30일 세종문화회관과 예술의전당에서 연주한 말러 3번 교향곡은 완전히 다른 공연이었다. 세종문화회관 공연은 평범하고 답답했지만 예술의전당에선 대편성 오케스트라의 박력 있는 사운드와 합창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다. 다목적 극장과 클래식 전용 홀의 음향 차이 때문이었다. 정명훈은 "청중도 그렇게 생각하는데, 하물며 지휘자는 어떻겠느냐"고 했다.
정명훈은 "문화적으로 훌륭한 나라를 만들려면 일류 오케스트라도 필요하다. 정치적 공방 때문에 전용 홀이 표류하는 것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나를 위해서 전용 홀을 지어달라는 게 아니다. 서울시향만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얘기가 있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음악은 퀄리티(수준)가 가장 중요하다. 세계에 내놓을 만한 오케스트라가 없는 게 가슴 아프다. 전용 홀은 오케스트라를 키울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선택의 문제다."
정명훈은 "'2008년 전용 홀 개관'이 서울시향을 맡을 때의 약속이었다. 나는 여전히 기다리고 있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남북한 음악가가 함께 베토벤 9번 '합창'을 연주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해왔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국회에 가서 '합창'을 연주해야겠다. 정치가들이 서로 싸우지 말고 화합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