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자, 클래식] 어떤가요 이런 연말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1.01.06 03:04

29日… 서울시향의 말러 3번, 전율의 100분
30日… '하우스콘서트'에서 음악·와인에 취해…
31日… 정명훈 반주 아리아 들으며 황홀한 送年

지난 31일 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국립오페라단 송년 공연 2부 무대에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걸어 들어왔습니다. 지휘자가 아닌 피아니스트로서였습니다. 첫 번째 '손님'은 오페라 '룰루'에서 주역을 맡았던 소프라노 박은주. 구노의 '파우스트' 아리아가 끝나자 정명훈은 피아노 의자에 앉아 박수를 보냈습니다. 그러곤 "다음은 누구지?" 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쭉 빼고 무대 뒤를 돌아보더군요.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의 카운트테너 이동규, '이도메네오'의 테너 김재형, '메피스토펠레'의 소프라노 임세경,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의 테너 정호윤, 바리톤 우주호, '맥베드'의 바리톤 고성현 등이 이런 식으로 차례차례 정명훈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작년 한해 국립오페라단의 대표작을 누빈 성악가들이 정명훈의 반주에 맞춰 들려준 아리아들은 한 해를 마감하는 순간을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정명훈이 서울시향과 말러 교향곡 3번 연주를 마치고 인사하고 있다.
정명훈은 작년 초 서울시향을 이끌고 국립오페라단의 '이도메네오'를 지휘했습니다. 1990년대 프랑스 바스티유 오페라단을 이끌었던 그가 처음으로 국립 오페라단 오페라를 지휘한 겁니다. 정명훈은 오는 4월엔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할 예정입니다.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에 선 그를 또다시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흥분됩니다.

정명훈은 지난달 29일과 30일 밤엔 100분짜리 말러 3번 교향곡을 잇달아 연주했습니다. 몇달 전부터 매진된 정명훈의 말러 시리즈를 보기 위해 모여든 청중들이 가득 메운 공연장은 야릇한 흥분과 기대로 넘쳐났습니다. 3층 객석 바깥에서부터 은은하게 울린 포스트혼(3악장),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가사를 따온 메조소프라노 캐런 카길의 독창(4악장)에 이어 신(神)의 사랑을 표현한 마지막 6악장은 감동의 순간이었습니다.

‘하우스 콘서트’송년 무대에 선 초등학교 6학년 트럼펫 주자 최민.

30일 정명훈의 말러 연주가 끝난 밤 10시쯤 서울 도곡동의 한 빌딩 지하 스튜디오를 찾았습니다. 피아니스트 박창수가 2002년부터 이끌어온 '하우스콘서트' 송년 공연이 열리는 곳입니다. 이 공연은 정원 120명으로 규모는 작지만 홈페이지 예약 개시 45초 만에 전석(全席) 매진이라는 기록을 세웠습니다. 저는 2부 초반쯤에 들어갔는데, 마침 서울시향의 말러 3번 연주에 객원으로 참여한 플루티스트 나상아도 공연 끝나자마자 저처럼 뛰어왔더군요. 이날 무대에는 초등학교 6학년 트럼펫 영재 최민부터 작년 세계적으로 이름난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5위에 입상한 피아니스트 김태형까지 40명 가까운 연주자들이 섰습니다. 덕분에 오후 8시에 시작한 공연은 11시 20분쯤 끝났습니다. 샌드위치와 비스킷 등 간단한 안주를 놓고 와인 파티가 이어졌고, 연주자들과 일부 청중들이 하나둘씩 연주에 나서 새벽 1시쯤 '종료'됐습니다. 여러분의 연말은 어땠습니까. 올 한해 클래식과 함께 한 번 놀아보지 않으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