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비언어극 '드로잉쇼-히어로'… 물감으로 되살려낸 시대의 영웅들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1.01.05 23:19

비언어극 '드로잉쇼-히어로'는 물감 범벅인 배우 4명이 빛을 주고받으면서 열린다. 초반에는 영상의 도움을 받지만 그다음부터는 철저한 수공업이다. 각자 부지런히 그린 그림 네 조각을 모으자 마이클 잭슨이 되고, 흰 종이에 물로 그림을 그리다 가루를 뿌리면 이소룡이 나타난다. 빠른 사물놀이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목탄으로 2~3분 만에 커다란 호랑이를 그려내는 장면도 숙련공의 솜씨였다.

그림을 재료로 쓴 비언어극‘드로잉쇼-히어로’. /펜타토닉 제공
미술로 열려 미술로 닫히는 '드로잉쇼'가 달라졌다. 2008년 초연 당시 이 공연은 드로잉(스케치)과 물감, 그림으로 승부하는 시도가 주목받았지만 주제의식이 약하고 장면들 사이의 이음매도 거칠었다. 하지만 영웅을 주제로 잡은 이번 '드로잉쇼-히어로'는 그 단점을 상당 부분 보완하면서 리듬감도 붙었다. 배우들만의 무대에 머물지 않고 관객 참여와 쌍방향 소통을 높인 전략도 좋았다.

'드로잉쇼-히어로'는 80분 동안 찰리 채플린, 수퍼맨 등 영웅들을 불러내며 웃음을 줬다. 때론 무대 전체를 캔버스 삼아 드로잉의 마술을 보여줬다. 후반부에서 물에 유성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고 천에 찍어내는 마블링, 프랑스 화가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1830)을 그려내는 장면이 특히 아름다웠다.

그러나 코미디 감각은 여전히 아쉽다. 미술 전문가들에게 연기 훈련을 시키는 건 물론 어려운 작업이다. 소박한 쇼맨십이 친근해 보이긴 하지만 폭소로 끓어올라야 할 대목에서 미지근한 건 풀어야 할 숙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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