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하는 별… 피아니스트 벤 킴

  • 성남문화재단
  • 글=류현정(음악 칼럼니스트)

입력 : 2010.12.17 13:47

2006년, 미소년 같은 20대의 재미교포 2세 피아니스트가 첫 내한 독주회를 열었다. 금호아트홀을 메운 관객들은 그의 준수한 외모가 아닌, 나이답지 않은 성숙한 음악성에 매료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벤 킴의 이름은 매스컴에 크게 오르내리지 않았다.

2005년 쇼팽 콩쿠르 본선에 올랐던 벤 킴은 당시 심사위원이자 1980년 동 대회에서 동양인 최초로 1위를 차지했던 당 타이 손에게서 “앞으로 주목할 필요가 있는 연주자”라는 코멘트를 들으며 서서히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한국 관객들과 인상적인 첫 만남을 가졌던 그해 가을, 벤 킴은 뮌헨 ARD(독일 공영 제1방송)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을 차지하며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콩쿠르가 스타의 등용문은 아니지만, 어쨌든 이 차세대 피아니스트의 비상은 반가웠다.

다섯 살 때부터 피아노를 시작한 벤 킴은 여덟 살에 독주 데뷔 무대를 가졌으며, 열두 살 때 협연을 할 만큼 어려서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그의 가족 중에는 음악가도 없었고, 치열한 조기교육이나 영재교육도 없었다. 아마도 그의 연주에서 드러나는 넓은 시야와 여유는 이러한 환경에서 기인하는 것처럼 보인다. 고교 졸업을 앞두고 참가한 마스터클래스를 통해 현존하는 최고의 피아니스트이자 교육자 중 한 명인 레온 플라이셔에게 발탁된 벤 킴은 스무 살 때부터 피바디 콘서바토리에서 레온 플라이셔와 문용희를 사사하며 최고 연주자 과정을 마쳤고, 2005년 이탈리아의 레이크 코모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에서 수학할 7명의 피아니스트 중 1명으로 뽑혔다.

2000년 영 아티스트 월드 피아노 콩쿠르에서 그랑프리를, 2004년 예일 고든 피아노 콩쿠르에서 최고상을 수상한 벤 킴은 ARD 콩쿠르 우승 이후 본격적으로 연주 경력을 쌓았다. 카네기홀, 케네디 센터, 베를린 콘체르트하우스 등의 유명 홀과 페스티벌에서 연주하며 그의 실력과 경력은 꾸준히 상승 곡선을 그렸다. 벤 킴이 존재감을 드러낸 시기는 임동민, 임동혁을 필두로 김선욱, 김태형, 김준희, 지용 등 젊은 피아니스트들이 대거 국제 콩쿠르에서 입상하고 국내외에서도 약진을 거듭하던 때와 일치한다. 간간이 들려오던 한국 연주자들의 국제 콩쿠르 수상 소식은 이제 보편적인 일이 되었으며, 이들은 오빠 부대의 거품이 빠져도 건재할 만큼 뚜렷한 개성과 신념을 보여주고 있다. 콩쿠르 과열 현상이나 클래식 팬덤 문화에 대한 우려를 뒤로하고 다음 세대를 이끌 피아니스트의 지형도가 이미 틀을 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벤 킴은 2007년과 2008년 LG아트센터 독주회, 올해 초 금호 라이징 스타 독주회 등을 통해 깊어가고 있는 감성과 음악 세계를 보여주었다. 그는 현란한 기교를 뽐내지 않는다. 주관적인 해석을 강요하지도 않고, 작곡가의 의도에 충실하며 작품 안에 담긴 메시지와 순간의 아름다움을 섬세하게 포착해낸다. 단숨에 폭발적인 반향을 불러일으키기보다는 시간이 흐르면서 더욱 윤택함을 더한다는 장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벤 킴에겐 기대할 것이 많이 남아 있다. “정상급 연주자로서 커리어를 쌓아갈 놀라운 잠재력을 지녔다”고 말한 벤 킴의 스승 레온 플라이셔의 말을 상기해볼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벤 킴 내한 독주회의 프로그램은 대부분 고전과 낭만에 기울어 있었고, 2007년 소니에서 발매한 레코딩은 쇼팽과 모차르트, 드뷔시의 작품을 담고 있다. 그러나 그는 쇤베르크, 자클린 퐁탱 등 20~21세기에 걸친 작곡가의 작품에 이르기까지 넓은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또한 해외 스케줄과 달리 국내에서 그의 협연 무대는 쉽게 볼 수 없었다. 젊은 연주자들이 진취적으로 국내에서 유명 오케스트라와 자주 협연을 하고 인지도를 높여가는 것과 대조적인 행보였다. 러시아의 정취와 낭만을 담아낼 성남아트센터의 12월 마티네 콘서트에서 벤 킴은 김대진・수원시향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2번을 연주할 예정이다. 묵직한 울림과 물결치는 러시아적 감성을 그가 어떻게 그려낼지가 감상 포인트다.

벤 킴은 현재 베를린 예술 대학교에서 클라우스 헬뷔히를 사사하고 있다. 음악이 끝없는 배움과 탐구의 길인 것처럼 벤 킴은 자신의 연주에 무궁무진한 이야기와 깊이를 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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