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중의 오픈스테이지] 점점 심화되는 공연계의 아이돌 의존

  • 스포츠조선=김형중 기자

입력 : 2010.12.09 10:20

대학로에서 수십년 동안 연극을 해온 분을 며칠 전 만났다. 연극하기가 예전같지 않다, 이젠 정말 못하겠다는 '일상적인' 이야기 끝에 아이돌 스타가 화제에 올랐다. 한 유명 뮤지컬 제작사에서 아이돌 스타를 캐스팅해 자신이 했던 작품을 뮤지컬로 만든다는 것이다. 그는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아이돌을 캐스팅했으니 투자받기도 순조로울 것이고…, 그저 부러울 따름"이라며 입맛만 쩍쩍 다셨다.
또다른 뮤지컬 제작사는 아이돌 스타 캐스팅에 실패해 대형공연장 대관을 포기했다고 한다. 그 스타의 스케줄에 맞추기 위해서 아예 공연 일정을 늦췄다는 것이다.
뮤지컬계의 아이돌(또는 걸그룹) 스타에 대한 의존도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좋은 대본 하나 구해달라"고 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아이돌 스타 한 명만 소개시켜달라"고 반농담 조로 이야기한다. 얼마전 퇴임한 삼성라이온스 김응용 사장이 과거 감독 시절 "(선)동렬이도 가고, (이)종범이도 가고…"라고 탄식했듯이 제작자들은 "아이돌도 없고… 작품하기 힘드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제작사의 능력=아이돌 캐스팅 능력'이 된 듯한 느낌이다.
아이돌과 걸그룹의 영향력은 공연계에서만 강력한 것은 아니다. 아이돌과 걸그룹은 이미 국내 대중문화의 지형을 바꿔놓았다. 포크와 록 등을 무력화시키며 가요계를 석권하더니 가요프로는 물론 예능프로의 틀 자체를 바꾸어놓았다.
이들을 위한 맞춤형 프로그램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다. 아이돌과 걸그룹 멤버들이 모여 토크쇼를 하고, 요리도 만들고, 운동회도 한다. 이뿐아니다. 드라마와 영화에 진출해 수준급 연기력을 선보이고 있으며, 특기인 노래실력을 살려 뮤지컬에서도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뮤지컬은 아이돌의 활동 영역에서 넓게 보면 사실 외곽에 속한다.
어떤 사람들은 "TV가 온통 아이돌 일색이다", "그 얼굴이 그 얼굴이라 지겹다"고도 하지만 아이돌과 걸그룹은 국내 대중문화산업의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특히 한류의 중심축으로서 막강한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 아시아권에서 그 어떤 외교관들보다 더 큰 몫을 해내고 있다.
뮤지컬계에서도 아이돌들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5,6년전 뮤지컬붐이 일면서 일시적으로 투자가 몰려 형성된 거품이 빠져나간 빈자리를 메워주는게 그나마 이들이다. 투자를 유인하기도 하고 팬들을 불러 모은다. 사실 공연장에 갈 때마다 깜짝 놀랄 때가 많다. 한류스타들이 출연하는 뮤지컬에는 국내 팬들뿐아니라 일본에서 온 중년 여성팬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거품이 확 빠지면서 비틀대던 업계가 지탱하는데 힘이 됐다.
그러나 아이돌 스타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 분명 정상은 아니다. 혹자는 '아이돌들이 뮤지컬시장의 외연을 ��히고 있다'고 하지만 또다른 이는 '이 또한 거품'이라고 주장한다.
문제는 '아이돌 이후'이다. 아이돌을 보려고 온 팬들을 뮤지컬 팬으로 전환시키는 게 과제다. 스타보다는 작품을 보고 와야 진정한 팬이고, 그런 팬들이 있어야 공연산업이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엔터테인먼트팀 telos21@sports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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