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2.03 16:56

범생작가 vs 부랑아
정답없는 인간성 묘사
오만석 등 열연
[이브닝신문/OSEN=오현주 기자] 두 형제가 보인다. 술병을 손에 들고 스스로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라고 외치며 넘치는 마초 근성을 주체하지 못하는 형, 반듯한 분위기에 한치의 오차도 용납할 것 같지 않은 표정으로 타자기를 두들겨 대는 아이비리그 출신 동생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살았던 형제는 처음에는 ‘비교적 정상적인 경로’로 상대를 탐색해나간다. 그런데 그 과정이 갈수록 예사롭지 않다. 말로써 서로의 생각을 타진하던 이들은 어느 샌가 그 단계를 훌쩍 뛰어넘어 육탄전으로 자신의 생각을 검증하려 들기 시작한다. 온몸을 던진 블랙코미디 연극 ‘트루웨스트’가 국내 초연을 시작하며 관객몰이를 예고했다.
“인생, 한방이야.” 형의 고함에 동생이 묻는다. “그런데 형이 원하는 게 뭐야.”
198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에서 방랑하며 몇년 동안 소식을 끊었다가 불현듯 나타난 형 ‘리’는 시나리오 작가인 동생 ‘오스틴’의 일상을 남김없이 깨놓는다. 처음엔 사소하게 부딪히던 일들이 시간이 흐르면서 그 정도를 더해간다. 그 과정에서 형제는 ‘시나리오 작업’이란 그들 자신도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로 극단의 갈등을 빚으며 이제껏 발견하지 못한 전혀 다른 캐릭터를 자신들의 얼굴에 드러낸다.
연극 ‘트루웨스트’는 서로 다른 성격을 가진 형제의 갈등을 가장 원색적으로 부각시키면서 극으로 대비되는 인간성의 양면을 말하고자 한 작품이다. 나도 모르는 자신, 내 안에 숨은 또 다른 자신을 발견하는 일엔 상대가 필요하다. 작품은 그 상대로 가장 가까우면서 먼 관계이기도 한 형과 동생을 끌어들였다.
남자·형제·가족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서걱거리는 이질적 관계를 설정해놓고 ‘내가 그들이라면’이란 가정에 빠지게 한다. 각 극점에서 살아온 형제의 모습으로 대변되는 인간 카테고리의 성립이나 이중성을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은 남자는, 형제는, 또 가족은 이래야만 한다는 정상적인 규정을 거부한다. 성공한 것처럼 보이는 동생과 성공하지 못한 듯한 형이 귀결하는 결론 역시 정답은 없다. 작품은 누구의 방식이 옳았는지에 연연하지 않는다.
때리고 부수고 목 조르는 최악의 상황으로 무대 전체가 쓰레기장을 방불케 하는 혼돈으로 뒤덮일 무렵 형제의 싸움은 일단락된다. 하지만 그것이 끝이 아니란 건 싸우는 형제도 지켜보는 관객도 알고 있다. 갈등 끝에 화해, 전쟁 후의 평화, 반목 뒤에 후회, 이러한 일상적인 결론은 기대할 필요조차 없는 것들이다. 그저 악이 악이 아니었던 것처럼 선도 선이 아니었던, 그들의 처음 어느 순간으로 되돌아가면 된다.
세 커플의 연기파 배우들이 나섰다. 배우 오만석과 조정석, 배성우와 홍경인, 김태향과 이율·김동호가 다른 색깔의 형제를 연기한다. 분위기는 다르지만 매번 이런 과격한 연기를 하고 공연 마지막 날까지 무사할 수 있을지 우려가 될 정도의 몰입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 형제들이 ‘별 탈 없이’ 싸움을 이어갈 수 있다면 그 무한대결은 서울 동숭동 컬처스페이스엔유에서 내년 2월27일까지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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