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열은 키 순서… 맨앞이 제일 커 홀로 춤추는 主役 승진을 꿈꾸죠"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12.02 03:03

群舞 추는 백조 24마리가 입을 열었다

오는 7~12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호수가 고이고 백조가 날아든다. 국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다. 매튜 본이 근육질 남성 백조로 패러디했고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 영화 '블랙 스완'으로도 파생된 이 작품은 한국 관객이 가장 좋아하는 발레로 꼽힌다.

'백조의 호수'는 마법에 걸려 밤에만 사람으로 변하는 백조 오데트와 지그프리트 왕자의 숭고한 사랑을 따라간다. 질서정연하게 기하학적 무늬를 빚어내는 24마리 백조는 이 발레의 숨은 주역이다. 한 호흡의 군무(群舞)로 관객을 사로잡는 이 '백조들'에게도 규칙과 고통, 꿈이 있다.

발레‘백조의 호수’중 일사불란하게 무늬를 만드는 24마리 백조. /국립발레단 제공
백조 '1~24'는 키 순서=키가 가장 큰 백조가 '백조 1', 최단신이 '백조 24'로 불린다. 큰 백조들이 무대 앞에 서고 뒤로 갈수록 작아진다. 올해 24마리 백조를 맡는 발레리나들의 키는 161~172㎝로 평균 166㎝. 지난해 입단한 김지희(168㎝)는 "백조는 시선을 아래로 깔고 날갯짓을 하며 움직여 어지럽다"면서 "맨 앞줄에 있으면 떨리고 부담이 크지만 둘째 줄부턴 앞 무용수를 따라할 수 있어 편하다"고 말했다.

"개성을 제거하라"=24마리 백조는 6명씩 4줄, 12명씩 2줄, 사선(斜線)으로 24명, 12명씩 반원(半圓) 2개 등 여러 패턴으로 대형을 바꾼다. 남녀 주인공이 파드되(2인무)나 솔로를 출 때 24마리 백조는 정물화처럼 배경이 된다. 최고참인 10년차 정혜란은 "백조 대부분은 1막 1장, 2막 1장에는 사람 역할로 왈츠 등을 추어야 하기 때문에 체력적으로나 심리적으로 힘든 작품"이라면서 "24명이 한 몸같이 움직이는 통일성이 생명"이라고 말했다.

꼼짝 않고 3분=백조들은 퇴장할 때마다 무대 뒤에서 철퍼덕 주저앉거나 키친타월로 땀을 훔친다. 중간휴식 15분도 "마사지 받고 바나나 먹고 상체에 '몸분' 덧칠하고 화장실 가고 의상·토슈즈를 고치면 금방 지나간다"고 했다. 주역이 솔로를 출 때 3분 동안 한 자세로 버티는 대목을 가장 버거워했다. 2003년 입단해 24마리 백조 중 '넘버 2'라는 김지현은 "등에 힘주고 어깨 펴고 호흡도 위로 올린 채 몸을 잡고 있어야 한다"면서 "다리에 쥐가 나도 일단 참았다 퇴장한 뒤 응급처치를 받는다"고 했다.

백조도 '승진'을 꿈꾼다=24마리 백조 대부분은 지금 군무진(陣)에 속해 있지만 '비상'을 꿈꾼다. 솔리스트(조역)나 주역으로의 승급이다. 머리장식도 오데트는 진짜 깃털을 달지만 24마리 백조는 얇은 망사다. 올해 입단해 '백조 12'로 출연하는 허다정은 "가만히 있는 것 같지만 머릿속으론 음악의 박자를 계속 센다"면서 "언니들처럼 언젠가 솔리스트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영국 로열발레단에서 활약하는 최유희를 포함해 김지영·김주원·김리회·고혜주가 오데트 역을 나눠 맡는다. (02)580-13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