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국내 첫 공연한 오페라 '룰루'… 소프라노 박은주 변화무쌍 연기, 강렬한 무대 디자인 눈길 끌어

  • 김기철 기자

입력 : 2010.12.02 03:03

국립오페라단(단장 이소영)이 국내 초연한 알반 베르크(Berg)의 오페라 '룰루'(11월 25일~28일)는 소프라노 박은주(44)의 화려한 등극을 알리는 무대였다. 박은주는 정부(情夫)와 밀애를 나누고 남편의 아들을 유혹하는가 하면, 유일한 사랑이라고 얘기했던 남편을 총으로 쏴죽이는 역까지 변화무쌍한 룰루를 2시간 20분 내내 숨 가쁘게 연기했다. 심장마비로 죽은 첫 남편의 배 위에 걸터앉아 "사랑한 적은 한 번이라도 있소"라고 묻는 질문에 "몰라요"라고 무심하게 대답하는 룰루를 박은주는 너무나 그럴듯하게 연기했다.

사무엘 윤(왼쪽)과 박은주. /국립오페라단 제공

박은주의 기량이 유감없이 발휘된 것은 그의 드라마틱한 목소리였다. 독일 브레머하펜 극장과 도르트문트 오페라하우스 주역 가수로 활약한 그는 반음과 불협화음의 홍수, 저음과 고음이 느닷없이 이어지는 고난도 선율을 정확한 음감과 풍부한 성량으로 요리하면서 극(劇)에 긴장을 불어넣었다. 작년 런던 로열오페라단 '룰루'에서 주역을 맡은 스웨덴 소프라노 아그네타 아이첸홀츠(Eichenholz)도 연습 때 목에 부담이 올 정도라고 말한 선율을 박은주는 나흘간 혼자서 떠맡았다.

룰루의 상대역 쇤 박사와 살인마 잭더리퍼를 맡은 바리톤 사무엘 윤은 박은주와 함께 탄탄한 음색과 연기로 오페라 '룰루'를 떠받치는 기둥 역을 톡톡히 해냈다. 자기 시계를 훔치려던 어린 룰루를 키워낸 후원자이자, 룰루의 마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는 쇤 박사를 연기하면서 사무엘 윤은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를 발휘했다.

하지만 지나치게 생략이 많은 연출은 등장인물의 캐릭터를 설득력 있게 그려내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게슈비츠 백작 부인이 룰루에게 왜 헌신적 사랑을 바치는지, 알바는 아버지를 죽인 룰루와 왜 사랑의 도피를 감행하는지 공감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게슈비츠 부인이 "여성의 권리를 위해 싸우려면 법학을 공부해야만 해"라고 읊조리는 마지막 대목은 느닷없었다.

잭더리퍼가 룰루를 살해하는 피날레에선 무대 전면을 선연한 핏빛으로 물들인 강렬한 무대 디자인이 눈길을 사로잡았다. 프랑크 크라머가 지휘한 팀프 앙상블은 현대음악이 주무기인 오케스트라답게 대중에게 낯선 베르크의 음악을 오페라와 접목시키는 데 솜씨를 보였다. 흥행을 안심할 수 있는 베르디와 푸치니 대신 '이도메네오' '메피스토펠레'에 이어 '룰루'까지 2010년을 국내 초연작으로 정면 돌파한 국립오페라단의 의욕도 높이 평가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