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산이 부서지는 가족… 그속에 자리잡은 희극(喜劇)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11.24 03:02

전문가들이 뽑은 올해의 연극 '에이미'
윤소정 내면연기 탁월 '최고의 배우'로 선정돼
'최고의 연출'엔 최용훈… 매끄러운 무대언어 돋보여

2010년 최고의 연극은 지난 2월 서울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에이미'(Amy's View)였다. 올 한 해 연극을 100~200편씩 본 연극 전문가 중 과반수가 윤소정이 주연하고 최용훈이 연출한 이 작품을 '2010년의 연극'으로 꼽았다. 본지는 연극평론가 구히서·김명화·김미도·김방옥·김성희·김윤철·이혜경·허순자씨와 구자흥 명동예술극장장, 공연 월간지 '플레이빌'의 김일송 편집장 등 전문가 10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다. '연극 베스트3'를 묻는 질문에 '에이미'는 6표를 받아 각각 3표씩을 얻은 '잠 못 드는 밤은 없다'(연출 박근형)와 '33개의 변주곡'(연출 김동현)에 앞섰다. '에이미'는 또한 올해 최고의 배우(윤소정·6표), 최고의 연출(최용훈·4표)도 배출했다.


 

아르코예술극장과 극단 컬티즌이 제작한 연극‘에이미’는 배우의 앙상블을 보는 재미도 컸다. 왼쪽부터 이호재·윤소정·서은경·김영민. /컬티즌 제공

'에이미'는 영국을 배경으로 한 가족의 불화(不和)에 집중하는 연극이다. 이 드라마에 낭만적인 화해는 없다. 거칠게 폭발하며 나아갔고, 관객은 얼굴을 때리는 차가운 눈발 같은 논쟁을 경험했다. 허순자씨는 "여러 극적 장치들 사이에서 윤소정의 내면 연기가 균형감을 유지했고, 연출도 드라마를 잘 읽어내 무대언어로 표현했다"고 평했다. 김미도씨는 "연극과 연기의 본질에 대해 성찰할 수 있게 해준 작품"이라고 했다.

'에이미'에서 연극배우인 에스메(윤소정)와 영화감독을 꿈꾸는 사위 도미닉(김영민)은 처음부터 으르렁거리며 물어뜯는다. 에스메의 딸 에이미(서은경)는 괴롭다. 과거(엄마)와 미래(남편), 순수예술(연극)과 대중예술(드라마·영화)이 정면 충돌하면서 한 가족이 부서진다. 에스메는 투자중개인 프랭크(이호재)에게 전 재산을 맡겼다 큰 빚을 져 드라마에도 출연해야 하는 신세가 되지만 도미닉의 도움을 거절한다.

이 연극은 무엇보다 밀도가 단단했다. 사각의 무대에서 숭고한 복서와 현실적인 복서가 상대에게 위협적인 펀치를 날렸다. 팽팽한 긴장 사이에서 희극성은 더 살아났다.

윤소정의 연기 아닌 연기, 화술이 좋은 이호재의 침묵, 서은경의 깔끔한 몰입, 김영민에겐 낯선 '나쁜 남자' 이미지 등이 균형 있게 어울렸다. 윤소정과 서은경은 고요한 집중과 폭발의 에너지를 만들었다. 최용훈 연출은 영화 '디 아워스' '더 리더'를 각색하기도 한 데이비드 해어(영국)의 지적이고 위트 넘치는 희곡을 매끄러운 무대언어로 살려냈다.

배우 윤소정은 '33개의 변주곡'에도 이름을 올렸다. 그는 음악학자(윤소정)가 베토벤 말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연극 '33개의 변주곡'에서 길고 지적인 대사를 소화하며 관객을 집중시켰다. 김방옥씨는 "연기 경력 50년의 윤소정은 '에이미'는 물론 '33개의 변주곡'에서도 매너리즘을 거부하며 신선한 정서가 전해지는 연기를 해 놀라웠다"고 평했다.

연출가 최용훈은 올해 '에이미'부터 '가정식 백반 맛있게 먹는 법' '왕은 왕이다' '세자매 산장' '냄비' 등을 잇달아 연출하면서 안정적인 무대를 만들었다.

'냄비'의 극작가이기도 한 김명화씨는 "텍스트(희곡)를 정확히 읽고 유연하게 표현할 줄 아는 연출가다. 관객이 스펀지처럼 드라마를 흡수하며 숨 쉴 수 있게 만든다"고 말했다. 김일송 편집장은 "치밀한 준비를 통해 밀도 높은 연극을 올리면서도 연출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좋은 연출가"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