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1.22 03:02
20일 서울 광장동 악스홀에서 열린 플레이밍 립스(The Flaming Lips)의 첫 내한공연은 세상에서 가장 환상적인 공연을 펼친다는 소문을 입증한 두 시간이었다. 미국 오클라호마 출신으로 1986년부터 지금까지 10여장의 정규 앨범을 낸 그들은 미국 인디 록의 대부다. 사이키델릭을 기반으로 만화적 상상력을 가미한 몽환적 음악이 트레이드 마크다. 그 자유로움이 무대에서도 그대로 표출됐다.

플레이밍 립스의 공연에는 언제나 댄서들이 투입된다. 댄서들은 현지 관객 중에서 뽑는다. 필자도 10명의 '관객 댄서'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의 공연을 바로 옆에서 본다는 건 엄청난 행운이었다. 그럼에도 기억이 또렷하지 않다. 꿈을 꾼 것 같았다. 플레이밍 립스는 공연 시작 전 이미 무대에 나타났다. 보컬이자 리더인 웨인 코인이 몇몇 주의사항을 직접 설명했다. 딱 거기까지가 현실이었다. 그리고 꿈이 시작됐다. 2시간 동안 단 한 순간도 현실 같지 않았다.
불이 꺼지고 무대 뒤편을 가득 채운 LED에 영상이 들어왔다. 그 안에서 멤버들이 하나하나 등장했다. 무대 뒤에 있던 수백 개의 거대한 풍선이 객석으로 뿌려졌다. 웨인 코인은 투명한 대형 풍선 속에 들어가 관객들의 머리 위를 한 바퀴 걸어서 돌고 무대로 돌아갔다. 물 위를 걷는 예수의 사이키델릭 버전 같았다. 이후 최근 앨범인 'Embryonic'의 수록곡부터 시작해 사이키델릭 퍼레이드를 펼쳤다. 사운드는 관객의 무의식 속으로 작렬했고 나체 여인을 테마로 한 영상은 시각적 황홀경을 펼쳤다. 웨인 코인이 쏘아 올리는 종이 폭죽, 때리면 불이 들어오는 차이나 심벌, 레이저빔을 쏘는 초대형 장갑이 중간 중간 투입됐다. 기승전결이 아니라 '전전전전(轉轉轉轉)'의 박진감을 선사했다.
'댄서'로 무대 위에 있다 보니 객석의 함성이 고막을 찢을 듯했다. 대표곡인 'Yoshimi Battles the Pink Robots, Pt. 1' 'Do You Realize??'에서 울려 퍼지는 '떼창'에선 전율이 느껴졌다. '이 맛에 다들 음악을 하는 거겠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구경꾼이 봐도 그랬으니 공연 말미 주인장 격인 웨인 코인의 안구에 살짝 습기가 찬 것도 자연스러웠다.
한국 관객의 환호에 힘을 얻었는지, 플레이밍 립스는 공연이 끝난 후 홍대와 건대 등을 누비며 새벽까지 서울을 즐겼다. 관객과 밴드 모두 최대치의 흥분을 느꼈던 황홀한 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