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1.04 03:04
서울바로크합주단과 공연하는 벤게로프
"보디빌딩·탱고에 빠져 몸에 무리 와 지휘에 관심… 내년부턴 연주, 轉業 아냐"
화려한 기교를 앞세운 벤게로프는 한때 세계 최고의 바이올린 차세대 연주자로 손꼽혔다. 열다섯 나이에 칼 플레시(Flesch) 콩쿠르에서 우승한 벤게로프는 매년 100여차례 순회연주를 다니며 10대 후반과 20대 전반을 보냈다. 그 중 4~5회의 내한공연에서 '귀신이 왔다 갔다'는 리뷰가 나올 만큼 바이올린 솜씨를 자랑해 국내에도 그의 팬들이 많다.

연주자로 승승장구하던 벤게로프는 2007년 초 갑작스러운 '부상'으로 연주를 중단했다. 그해 5월 런던 바비칸센터 연주 도중, "손을 다쳐 연주할 수 없다"는 폭탄선언과 함께 활 대신 지휘봉을 잡고 쇼스타코비치 교향곡을 지휘하는 깜짝쇼를 선보이면서 지휘자로 '전업(轉業)'했다.
그 벤게로프가 4일 서울바로크합주단과 차이콥스키 '현을 위한 세레나데'와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 교향곡 41번 '주피터'로 신고식을 갖는다. 우연히 그가 지휘대에 오르는 비슷한 시기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그와 실력을 겨뤘던 러시아 동료 바딤 레핀과 미국의 길 샤함이 각각 서울시향, 로열콘세르트허바우와 함께 내한공연을 갖는다.
'벤게로프 표' 연주를 기대하는 마니아를 위한 서비스일까. 1일 만난 벤게로프는 "지휘뿐 아니라 베토벤 '현을 위한 로망스' 2번을 연주하겠다"고 예고했다. 그는 "연주는 부상 때문에 잠시 중단한 것일 뿐 내년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재개한다"고 밝혔다.
―지휘자로 전업한 이유는.
"전업이 아니다. 지휘는 오래전에 시작했고, 5년 전부터는 주요 오케스트라와 작업했다. 연주를 못하게 되니, 지휘에 더 관심이 쏠린 것뿐이다. 지금은 폴란드 비에냐프스키 콩쿠르 심사위원장을 맡아, 세계를 돌아다니며 유망주들을 발굴하고 있다."
―부상은 어떻게 된 것인가(벤게로프는 2007년 영국 '데일리 텔레그래프'지 인터뷰에서 '화장실에서 미끄러져 손을 다쳤다'고 말했다).
"2005년부터 보디빌딩을 너무 열심히 하면서 손과 어깨에 무리가 온 모양이다. 또 탱고를 배우느라 몸을 썼고…. 2008년 오른쪽 어깨를 수술했는데 경과가 좋다. 지금은 오른쪽이 왼쪽보다 더 멀쩡하다."
―지난달 잉글리시 체임버 오케스트라와 루체른 페스티벌 스트링스가 내한공연에서 차이콥스키의 '현을 위한 세레나데'를 연주했다. 어떤 차이콥스키를 들려줄 것인가?
"연주는 누가 더 잘하는지 보여주는 스포츠 경기가 아니다. 난 러시아의 전통과 유산을 물려받았기에 차이콥스키 연주에는 자신 있다. 작품을 대할 때마다 세계 초연이라고 생각하고 연주한다."
―2007년 타계한 첼리스트 로스트로포비치를 음악의 멘토(mentor)로 생각한다고 했는데.
"열여섯에 만나 17년간 7장의 음반을 함께 냈다. 나는 지휘자나 실내악 연주자로서 로스트로포비치와 무대에서 너무나 잘 어울렸다. 그는 위대한 스승이다. 쇼스타코비치 같은 작곡가와 개인적으로 교류하면서 유산을 물려받은 사람이 그 말고 누가 있나. 로스트로포비치는 복잡한 메시지를 간결하게 전달하는 능력이 있다."
▶서울바로크합주단 창단 45주년 특별연주회, 4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02)592-57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