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0.10.24 22:18
칠기 분야 名匠 지정된 남양주 권영진씨
가난에 초교 마치고 상경, 나전칠기 공장서 기술 익혀… 명동성당 등 복원도 참여
◆일꾼에서 장인으로
남양주시 지금동에 있는 권씨의 공방 '봉산칠기'는 논밭 한쪽에 있는 축사를 손질해 쓰고 있다. 간판도 없고, 명장의 영예에 걸맞지 않게 초라하고 허름하다. 실내에는 옻칠을 입히던 수저, 도마, 함, 반닫이 등이 구석구석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권씨는 15년 전쯤부터 이곳을 빌려 하루 내내 붓과 씨름을 하며 작품을 만든다.

"그저 배가 고파서 시작했던 일이지요. 천성이 꼼꼼해 적성에 맞았던 것 같습니다." 권씨의 고향은 강원도 원주이다. 그러나 1971년 상경해 답십리에 살면서 운명처럼 옻칠을 만나고 붓을 잡았다. 당시 답십리에 나전칠기 공장들이 모여 있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초반 개발에 밀려 공장들이 남양주로 많이 이전하면서 권씨도 따라 들어왔다.
특히 남양주에서는 나중에 칠장(漆匠) 인간문화재가 된 정수화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인 가르침을 받았다. 권씨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상업제품보다는 전승공예를 해보자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전통에 눈길을 돌려 옻칠에만 매달렸다. 이때의 결심은 나중에 명장의 반열에 오르는 밑거름이 됐다. 1987년에는 독립해 공방을 냈다. 이름은 고향 마을인 원주시 봉산동에서 따왔다.
◆각종 공모전 휩쓸어
그는 "일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었지만 역시 간판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마흔을 넘긴 2001년에 칠기 기능사, 문화재 수리 기능자 자격을 취득했다. 공모전에도 두루 참여해 전국대회에서 40번 가까이 수상했다. 작년 제8회 한국옻칠공예대전에서는 대상을 받았다. 2005년에는 '경기 으뜸이'로 선정됐다. 좌우명 '생각하자. 바꾸자'처럼 기술개발에도 애써 옻칠 혼합기로 특허를 취득하는가 하면, 전용 수공구도 만들어냈다.
권씨는 2006년 조계사 대웅전 불단과 불상 보수도 맡았다. 금박을 벗겨낸 불상에 삼베를 바르고 옻칠을 했다. 이듬해에는 명동성당의 종탑 내부, 문짝과 문틀, 십자가도 맡았다. 1년 넘게 걸려 페인트를 벗겨내고 옻을 입혀 색깔을 냈다. 그는 "종교는 없지만 중요한 유물이 내 손을 거쳐 새 생명을 얻었다는 자부심을 갖는다"고 말했다. 종묘 제단(祭壇)과 제상(祭床) 보수, 경복궁 민속박물관 유물 보수와 전시용 재현품 제작에도 참여했다.
◆외국서 전시회 꿈꿔
"부패방지, 항균효과 등을 두루 갖춘 옻의 효능은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옻칠은 시간과의 싸움입니다.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어내려면 몇번이고 칠하고 말리기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이죠." 옻칠은 자연상태의 습기로 말리기 때문에 반닫이는 3개월, 나전이 많이 들어간 작품은 6개월 정도 걸린다. 권씨는 그러나 옻칠이 창조해내는 깊은 빛깔 때문에 싫증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권씨는 명장이 됐지만 경제적인 어려움은 여전하다. 직접 판로를 개척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씨는 "짬짬이 만든 작품이 전시관 하나를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라며 "유럽 등 외국에 가서 우리의 전통을 알리고 싶은데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비록 전통공예가 홀대받지만 나는 애국자라고 생각한다"며 "우수한 전통기술을 보전해 선조들에게 욕먹지 않는 칠장이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