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서 식판 닦아도 '새로운 마술' 생각뿐"

  • 박돈규 기자

입력 : 2010.10.14 02:55

돌아온 이은결, 제대 후 첫 '블록버스터 마술쇼'
"인터넷, TV 리얼리티 쇼… 마술의 비밀 많이 공개돼
도구만 대형 컨테이너 10개… 판에 박힌 형식 부술 것"

마술사 이은결이 돌아온다. 해군 마술병으로 25개월 군 복무를 마치고 지난해 제대한 그의 복귀 무대는 11월 7일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에서 개막하는 '이은결의 the illusion'이다. 이제 서른 살이 된 그가 이름을 걸고 하는 마술쇼는 3년 만이다. '이은결'이란 이름은 대중적인 마술 브랜드다. 한국을 대표하는 마술사인 그가 무대에 오른 10여년간 프로 마술사가 100배 늘고 마술 인구는 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마술시장이 커졌다. 이은결은 2006년 세계마술대회(FISM) 제너럴 매직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며 예술성을 공인받았고,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공연한 한국 마술사 1호이기도 하다.


 

병역을 마치고 3년 만에 무대에 다시 서는 마술사 이은결은“대형 상업공연이고 새로운 형식이라 내게도 모험”이라고 했다. /조인원 기자 join1@chosun.com

그런데 20억원을 들인 이번 블록버스터 무대를 앞둔 그는 여러 번 "이제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희소성이 사라졌잖아요. 인터넷과 TV 리얼리티쇼를 통해 마술의 비밀이 대부분 공개됐어요. 계속 대형 마술로만 갈 수도 없고…. 그 끝이 어디일지 불안했어요."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 방향성을 고민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은결은 "군대에서 식기를 닦고 걸레질을 하면서도 '새로운 마술'에 대한 고민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했다.

이번 무대에 그 해답이 있을까. 이은결은 "새로운 길의 입구로 봐달라"고 말했다. "이제 내 마술은 '무엇(what)'에서 '어떻게(how)'로 바뀐다"고도 했다. "솔직히 한국 마술은 대부분 수십 년, 수백 년 된 기술(속임수)의 모방이었습니다. 똑같은 그림을 되풀이해 보여주는 식은 이제 안 될 것 같아요. 형식을 부수려고 합니다."

그동안 이은결 마술쇼에는 패턴이 있었다. 처음엔 강력한 기술로 관객이 자신을 믿게 만든다. 이어서 코믹한 마술을 보여준 뒤 그 쇼의 핵심적인 마술로 넘어가고, 아이와 함께하는 마술로 동심을 자극한 다음 대형 마술로 마무리하는 것이었다. 이은결은 "이번 무대는 미디어아트·드로잉·마임 등과의 협업을 시도한다"며 "단편적인 마술의 나열로 끝나는 게 아니라 여러 장르가 복합된 엔터테인먼트 쇼가 되는 셈"이라고 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앵무새를 소재로 한 40분짜리 '논스톱 퍼레이드'다. "스케치로 출발해 여러 마술로 변형되다가 다시 스케치로 돌아오는 사이클"이라고 했다. 이은결은 "5년 동안 구상한 환상극 '스노우 맨'도 기대해 달라"고 말했다.

이번 무대에는 대형 컨테이너 10개 분량의 마술 도구가 투입된다. 세계적인 마술사 데이비드 카퍼필드와 작업했던 연출가 돈 웨인이 예술감독을 맡았다. 무대 뒤에서는 60여명의 스태프가 톱니바퀴처럼 움직인다. 평소엔 멍한 표정이지만 마술 이야기만 꺼내면 백열등에 불이 들어오듯 생기를 되찾는 이은결도 좀 긴장되는 모양이다.

"그동안 해왔던 걸 하는 게 아니라서요. 새 음식을 준비하는 요리사의 심정입니다. 감(感)을 믿고 가야죠."

▶11월 7일부터 서울 충무아트홀 대극장. (02)501-7888